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12월3일 포르투갈 팀을 상대로 우리나라 팀이 2-1로 역전하며 이긴 때이다. 그리고 이 경기의 종료로 16강 진출이 확정되지 못하고, 우루과이와 가나 경기 결과가 나오기를 8분 기다려서 마침내 승점이 높은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때였다. 이때 8분은 80분이라도 되는 양 느껴졌다. 이 순간 우리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느꼈고, 삶에서 자기 노력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조력과 운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12년전 사건 수아레스 "사과않겠다"
가나, 복수심에 우루과이 16강 저지
그런데 우루과이와 가나전 결과를 기다린 8분 동안 의문이 생겼다. 가나 선수들이 한 골도 내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너무나 결사적이었다.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가나 감독이 선수 1명을 교체하기까지 했다. 가나팀이 2-0으로 지고 있어서 16강 탈락이 확정된 상태라서 3-0으로 져도 결과가 같은데, 왜 부상을 무릅쓰고 악착같이 싸우는 것인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가나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자기 경기력을 잘 보여서 좋은 프로팀으로 진출하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나중에야 8분 싸움이 가나의 12년 걸린 복수라는 것을 알았다. 2010년 월드컵 8강전에서 가나와 우루과이가 1-1 동점으로 연장전에 들어간 막바지에 가나 선수의 헤딩으로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가 손으로 공을 막았다. 수아레스는 이 파울로 가나에게 페널티킥(penalty kick)을 내주고 퇴장을 당했다. 가나는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승부차기에서 4-2로 졌다. 12년이 흘러 두 팀이 다시 만나자 가나는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막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가나의 복수심이 더욱 타오른 것은 경기 직전 기자 회견에서 수아레스가 한 말 때문이라고 한다. 12년 전 사건에 대해 사과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사과하지 않겠다. 나는 당시에 레드카드를 받았다. 가나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만약 가나 선수를 다치게 했다면 사과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 관점만 따진다면, 수아레스는 파울을 잘 활용한 영리한 전술을 펼쳤고, 파울에 대해 대가도 치렀기 때문에 사과할 것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팬의 관점에서 가나 국민의 분노를 고려했다면 다르게 말할 수 있었다. 그가 팬 입장에서 가나 국민이 느끼는 분노를 자신도 이해한다고 먼저 공감을 표현하고, 선수로서 본능적으로 손을 뻗쳐 공을 막는 파울을 저질렀는데, 선수로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사과한다고 12년 전에 아니면 이번에라도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자기 관점에서 잘못한 것 없는데도
상대방 상처 왜 받았는지 고려해야
사과할 일 있다면 하고 다음 해 맞자
사과할 필요성을 따질 때, 우리는 자기 관점만 고려하여 잘못이 없다고 판단하여 사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기 관점에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상대방이 왜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상대방 입장까지 고려하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상대방 관점에서 내 행동으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는 것이 사과의 출발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기이다. 내가 사과할 일이 있는지 살펴보고 만약 있다면 올해가 저물기 전에 사과하고 다음 해를 맞이하자.
/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