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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필 한국국토정보공사(LX) 경기남부본부장
겨울 볕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주말 아침, 자율주행 차량을 타고 스마트농장으로 이동하며 젊었을 때 즐겨읽던 노자의 도덕경을 되뇌인다. 가을걷이가 끝난 겨울 초입의 농촌 풍경은 참으로 고즈넉하다. 나는 차에서 내려 차갑지만 상쾌하기 그지없는 공기를 만끽하였다. 어릴 적부터 땀을 뿌린 만큼 돌아오는 풍요로움과 흙내음이 좋았다.

학업과 취직을 위해 대도시에 나갔었지만 점점 낙후돼가는 듯한 고향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대도시에서는 자율주행, 드론, 인공지능, 디지털트윈 등 무궁무진한 신기술들이 이미 실험되고 있었다. 나는 내 고향을 이러한 기술들을 활용해 더 살기좋은 스마트 농업도시로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귀농을 택했다. 처음 농업용 드론으로 농약을 살포하고, 파종하고 토양상태 등을 측정하는 나를 고향 어르신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농사는 그렇게 짓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요지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네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하며 새벽부터 밭일을 나갔던 황소는 지금 집집마다 트랙터와 컴바인으로 변신했다. 나는 열정이 있었고, 내 고향이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을 활용한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데이터 기반 스마트 농업도시 실험
농가 보호 법·제도 오히려 '장애물'


나는 서해와 금강으로 둘러싸인 고향의 지형적 특성을 파악하고 몇 년에 걸쳐 토양상태, 기온변화, 작황실적, 유통판로 등의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 어떤 작물을 어떤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좋을지 디지털트윈 기술을 활용해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처음에는 외면하던 어르신들도 끈질기게 찾아가 보여드리고 설득하자, 조금씩 동참하시는 분들이 늘어갔다.

하지만 '아~ 이제 뭔가 되기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가로막는 더 큰 장애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농가를 보호해준다고 믿었던 철벽같은 법과 제도였다. 여러 실험 결과를 보여주며 전근대적인 환경에 머물러 있는 나의 고향과 영세한 농업생태계의 틀을 바꿔보려 해도, 예산집행과 정책을 반영하는 데에는 많은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농가는 물론이거니와 소규모 마을 가게들도 답답해 하긴 했지만 곧 체념하듯 순응하였다.

하지만 바뀌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뜻을 함께한 사람들과 수년간 나는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와 시도는 조금씩 환경을 변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열악한 농가와 철벽같은 법제도 사이에서 관련 공기업이 다리가 되어 주면서 문제해결의 유연제가 되었다. 공기업이 자체 법제정으로 힘을 얻으면서 앞장서서 제도 개선을 위해 발 벗고 나서주었으며, 다양한 재정지원으로 시장이 유연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판도를 바꿔 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제 나의 고향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보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스마트 농업도시가 되었다.

공기업, 법 제정·재정지원 시장 유연
민간과 상생 터전 마련 LX의 사명
산업생태계 조성 공사법 제정 노력


시원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바다와 마주한 드넓은 고향땅에서 차오르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진다. 창 밖에는 올해 첫눈이 하얗게 내리고 있었다. 어제 공간정보 발전간담회 참석을 위해 장거리 운전을 했더니, 피곤해서 소파에서 잠깐 잠이 들었나보다. 탁자에는 고향에서 보내온 호두가 놓여 있다. 여운이 가시지 않은 예지몽(豫知夢)을 생각하며 딱딱한 껍질을 깨고 고소한 호두를 맛본다. 간담회에서 만난 교수와 기업대표들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LX(한국국토정보공사)가 민간의 앞선 기술을 자유롭게 실험하고 꽃피울 수 있도록 공간정보 시장의 흐름을 견인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각자의 역할 속에서 서로 도우며 성장해 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바로 LX의 사명이라고 다시금 생각한다. 민간과 상생하며 자유롭고 풍요로운 산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사법 제정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길 '훌륭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 존재조차도 모른다'고 하였다. 다가올 모든 세상의 기초가 되는 공간정보의 태평성대를 위하여 LX는 그 역할을 소리없이 감당해 가야만 할 것이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큰 나무를 꿈꾸며, 딱딱한 껍질을 뚫고 결국 뿌리를 내리는 씨앗처럼 내일 아침도 출근과 함께 구두끈을 고쳐 매고 쉼 없이 달려야겠다.

/윤한필 한국국토정보공사(LX) 경기남부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