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칠리아 마피아의 돈줄은 피조(Pizzo)이다. 보호비라는 뜻인데, 피조를 바치지 않으면 마피아의 등쌀에 생업을 포기해야 한다. 시칠리아 한 곳에서만 마피아가 챙겨가는 피조가 수조 원대라 한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거부하기 힘들다. 1991년 리베로 그라시라는 사업가가 피조를 공개 거부했다가 살해됐다. 간간이 '아디오 피조(보호비여 안녕)' 운동이 벌어지지만, 마피아의 보복 때문에 지지부진하다.
최근 한 TV 교양프로그램이 소개한 마피아의 악행은 단순히 보호비를 뜯어가는 수준을 넘어섰다. 아그로(농업) 마피아는 대규모 농장에 불법 이민자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에코(환경) 마피아는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권을 따낸 뒤 이를 되팔아 수익을 올린다. 불법 폐기물 처리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마피아는 소말리아 앞바다에 독성 폐기물을 버려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다. 사업자로 세탁한 마피아의 만행이다. 배후엔 부패한 관리와 기업들이 있다.
한국 조폭(조직폭력단)들의 발전사(?)도 마피아와 다르지 않다. 일제시대 한국 상인들의 보호자를 자처한 김두한식 야인시대의 낭만은, 영세상인과 기업을 갈취하고 불법 산업에 기생하는 조폭들의 야만에 자취를 감췄다. 현대 조폭들은 룸살롱이나 파친코 영업권을 놓고 칼부림하던 과거 조폭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건설, 유통, 금융 계열사를 거느린 조폭 그룹 골드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직원들이 피비린내 나는 암투를 벌이는 영화 '신세계'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다.
최근 검찰이 대장동 비리 최대 수익자인 김만배씨의 범죄수익 은닉을 도운 혐의로 3명을 체포했다. 이 중 한 명은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김씨를 헬멧을 쓴채 오토바이로 호위해 '헬멧 맨'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그는 김씨 재판을 빠짐 없이 방청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의 전직이 쌍방울그룹 부회장이다. 쌍방울그룹은 경기도 대북사업비 횡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고 있다. 김성태 전 회장은 검찰 수사 직전 해외로 도주해 호화 도피 행각으로 유명해졌다.
여러 언론사들이 김 전 회장과 헬멧 맨이 조폭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국민 의류기업 쌍방울을 인수한 사실도 놀라운데, 대장동의 대장 브로커와 경기도까지 인연을 맺은 위세는 더욱 대단하다. 조폭의 그늘이 그만큼 넓어지고 짙어진건가.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