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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캠핑이라니! 제정신이야?" 나는 기겁을 했다. 도대체 그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일당도 주지 않는데 왜 한다는 거야. 끝끝내 반대했지만 친구들은 텐트며 아이스박스 등을 트렁크에 가득 싣고 우리 집 앞에 나타났다. 나는 잔뜩 뿌루퉁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초겨울 날씨는 다행히도 포근했다. 그래도 이런 날엔 커튼 활짝 열고 담요 한 장 몸에 돌돌 말고서 넷플릭스나 보는 것이 딱인데. 나를 제외한 세 여자는 신이 났다. 음악 볼륨을 크게 높였다가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이 안 들린다고 운전하는 친구에게 욕을 먹어도, 김치찌개를 끓일 묵은지를 안 챙겼다고 욕을 먹어도, 맛집 리스트를 찾아두지 않았다고 욕을 먹어도 다들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투덜거리긴 했지만 나도 금세 마음이 풀어져서 조잘조잘 별소리를 다 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떠난 캠핑이라 우리는 초보나 다름없었다. 산속 같은 곳은 엄두도 못 냈고 널따란 공터 같은 캠핑장에 도착했다. 겨울이라 고즈넉했다. "그냥 우리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데?" "운동장이면 어때? 그냥 어딜 나왔다는 게 좋은 거지." 하긴 맞는 말이었다. 친구들은 이제 슬슬 퇴사를 준비 중이다. 좋은 직장엘 다니고는 있지만 더 늦으면 독립 시기를 놓칠 거라고 했다. 나를 빼고는 모두 비혼이다. "육십까지는 빡세게 벌어야지. 그 이후로 칠십까지 10년 동안은 아르바이트 삼아 좀 살살 벌고. 그래야 백세 인생 버틸 수 있지 않겠어?" 맞는 말이다.

친구들과 10년만에 온 1박2일 캠핑
예전엔 남자친구 이야기 등 했는데
이젠 건강·돈 관련 대화로 달라져


누군가는 목살을 굽고 누군가는 햄을 지졌다. 나는 꽁치김치찌개를 끓이겠다고 나섰다. 김치 넣고 꽁치 캔 넣으면 양념도 딱히 할 것 없는 가장 쉬운 것이니까 말이다. 휴게소 편의점에서 대충 사온 포장김치는 하나도 익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도 뭐, 나는 별 걱정하지 않고 냄비에 김치를 쏟아붓고 꽁치캔도 부었다. 한 숟갈씩 떠먹은 친구들이 와아, 외쳤다. "끝내줘.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지?" 내가 먹어도 놀라웠다. 밍밍하고 비릿하고 느끼했다. 친구들의 야유가 이어졌다. 뒤늦게 양념을 이것저것 넣어보았지만 여전히 먹을 지경은 되지 못했다. "그냥 고기나 먹자." "그래, 우리가 뭐 꽁치김치찌개 먹으려고 캠핑 온 것도 아닌데, 뭘." 성격 좋은 친구들에게 용서받은 나는 설거지를 약속했다.

트렁크 안에서는 릴랙스 체어가 네 개나 나왔다. 점퍼로 꽁꽁 싸매고 불 앞에 앉으니 겨울 햇살도 진했다. 얼굴이 따끈했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과의 캠핑이 10년 만이다. 10년 전 우리는 캠핑을 오면 남자친구 이야기, 소개팅 이야기, 회사 상사의 뒷담화 같은 걸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달라졌다. 국민연금과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 꼬라박은 주식, 맛있는 과일집 그런 이야기를 한다. 결국 건강하고 돈 많은 할머니가 되기 위한 과정에 관한 얘기들이다.

뜻하지 않은 비혼녀 관한 출판 회의
모두 행복한 할머니 되기위해 '쿵짝'


"우리 서른 살쯤엔 골드미스니 뭐니 하면서 혼자 사는 여자들을 위한 자기계발서 같은 거 엄청 많았잖아. 그런 거 보면서 부러워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 언니들 다 어디 간 거야? 왜 이제 책 더 안 써줘? 비혼녀들 롤 모델, 그런 거 왜 이제 없어?" "글쎄, 그 언니들 다 결혼했나?" 친구들의 의문에 내가 대답했다. "너희들이 써. 내가 책 내줄게." 비혼녀 세 명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희들이 나이 들면서 만사 게을러지고 귀찮아진 것처럼 그때 그 언니들도 그렇겠지. 그러니까 안 쓰는 거지. 동생들은 숱하게 비혼에 홀리게 해놓고 말야. 책임감이 없어. 끝까지 책임지고 끌고 가줘야 하는 거 아냐?"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어린 비혼을 위한 책까지는 많은데 그 이상을 위한 안내서는 왜 없냐고. 혼자 노는 것에 도통한 나의 비혼 친구들, 아이 사교육비에 들일 돈을 야무지게도 모아 재테크에도 능수능란한 나의 친구들이 줄줄이 늘어선 후배 비혼들에게 해줄 말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의 1박2일 캠핑은 뜻하지 않게 출판기획 회의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신이 났다. 아직 쓰지도 않은 책 인세를 어떻게 알차게 모을 수 있을까, 북토크는 어디서 할까, 표지는 어떻게 만들까. 강원도의 밤은 짧았다. 모두 행복한 할머니가 되기 위해 또 한 번 쿵짝을 벌이는 시간이었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