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정치'란 말은 부정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전은 정치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각기 다른 이해를 조정하며 질서를 바로잡는 정치가 왜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게 된 걸까요.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사람, 속내와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왜 우리는 "정치하냐"란 말을 하게 되는 걸까요.
이해하고 조정하는 행위가 때로 박쥐같이 보여 오해를 산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에 매도 당하는 것일지 모르죠.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 스스로가, 정확히는 정치권이 스스로 이해 조정·질서 성립을 이루지 못해 시민들의 인간다운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재선 추대 선출에 초선 배제 주장
조정·질서 규합 실패하고 법정行
지역 정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경기도 정치를 책임지는 경기도의회는 특정 정당 소속 의원들이 일정 수가 넘어가면 교섭단체를 꾸립니다. 의원 개개인이 조례 발의라는 입법 기관의 역할을 하지만 교섭단체 사이의 협상에는 교섭단체 대표가 나서게 됩니다.
교섭단체 대표는 속한 개별 의원을 대표해 협상을 하고 이 결과를 구성원이 공유하는 것이죠. 정당정치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도의원 일부는 법원에 "국민의힘 당규에 의하면 당 대표를 의원총회에서 선출해야 하는데, 곽 대표(곽미숙 도의원)는 재선 이상 의원 15명의 추대로 선출돼 60명이 넘는 초선의원들의 선거권을 박탈했다"며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합니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된 도의원들은 도의회 입성 후 교섭단체를 꾸리고 교섭단체 대표를 선출했습니다. 그 중 국민의힘 대표가 선거가 아니라 재선 이상 의원 15명의 '추대'로 선출됐다는 것이죠. 재선·3선의 다선 의원 중심으로 대표가 선출되며 교섭단체 대부분을 구성하는 초선의원이 배제됐다는 주장입니다. 잘못 뽑혔으니 대표 권한을 정지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자, 여기서부터 이해 조정·질서 규합에 실패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교섭단체 소속인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정치의 본질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이 사회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 질서를 세워야 하는데 본인들은 조정과 질서에 실패한 셈입니다.
법원은 얼마 전 이 가처분을 인용했습니다. 직무를 정지해달라는 신청이 합당하니 우선 일시적으로 현 대표의 직무를 멈추게 한 것입니다. 정말 멈출지 말지는 향후 법원의 본안 소송을 통해 다투게 됩니다. 직무가 정지된 현 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법원이 인용한 가처분에 불복해 이의신청한데다 새로운 대행 선출에 대해서도 당내에서 가처분을 신청하겠다는 경고까지 보낸 것입니다.
인용 불복 이어 새 대행 가처분 경고
최악땐 의회 마비… "대화로 풀어야"
최종 판결까지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돼 최악의 경우엔 의회 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앞서 지난 7월 9대 남양주시의회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국민의힘 출신 의장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원 구성을 둘러싼 정당별 갈등이 격화됐고, 지난해 8대 포천시의회와 과천시의회 등 일부 시의회도 의장 불신임과 관련해 제기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잇따라 인용되며 후반기 의회 운영에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는 "의회는 정치 1번지다. 교섭단체 간 갈등은 물론 당내 불협화음도 정치와 대화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가처분 신청이 시작됐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3자에 판단을 맡기는 상황이다. 도의회 스스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란 단어가 부정적인 함의를 가질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인식을 퍼뜨리는 건 결국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 질서를 잡아 시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행위, 즉 '정치' 자체가 아니라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정치인과 정치권입니다.
자신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질서를 세우지 못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를 조정하고 질서를 세울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부디 실종된 정치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