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젤리나 졸리는 할리우드 현역 최고의 여배우다. 액션 장르에서 연기한 강인한 캐릭터가 인상적이지만, 연기력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쥘 정도로 출중하다. 할리우드에서 쌓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졸리는 약자를 위해 사회운동가로 헌신했다. 사적으로는 다국적 입양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입양 자녀가 국내 대학에 진학했을 때 학부모로 한국을 방문해 화제가 됐다.
공적으로는 UN(국제연합)과 손잡고 약소국과 분쟁국 아동과 난민의 인권 보호에 앞장섰다.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와 유엔아동기금(unicef)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세계 각국 난민 캠프를 찾아 국제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유엔아동기금 개인 최고액 기부자이기도 하다. UN은 국제시민상 최초 수상자로 졸리를 선정했고, UN 기자단은 '세계시민상'을 수여했다.
UN의 상징이었던 졸리가 지난 16일 유엔난민기구 특사직을 반납하고 UN과 결별했다. 그녀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할 때"라며 "난민과 현지 단체와 직접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유엔이 설립된 방식 탓에 유엔은 전쟁과 박해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강대국의 이익과 목소리에 영합한다"고 UN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졸리가 최근 UN이 인권 침해 문제에 대응하지 못해 환멸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고 사퇴 이유를 짐작한 배경이다.
졸리의 비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UN의 창립 목적은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이다. 목적은 고상한데, 기능은 발휘할 수 없는 구조다.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가 아니면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 딱 한 번 UN이 다국적 연합군으로 정의를 실현한 적이 있다. 한국전쟁 때 대한민국을 구하려 UN군을 파병했다. 상임이사국 소련이 불참하고, 대만이 중화민국으로 상임이사국이던 행운 덕에 한국은 자유진영의 일원으로 국체를 보전했다.
대만이 중국으로 교체된 1971년 이후 상임이사국인 미국·영국·프랑스와 러시아·중국은 자국의 이해를 앞세워 국제분쟁에 대한 UN의 개입을 방해한다. UN 산하기구들이 구호에 나서봐야 분쟁 해소 없이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졸리는 20년 UN 봉사를 통해 UN의 허구를 본 셈이다. 졸리를 통해 UN의 민낯이 드러났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