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암흑기였냐면 하루에 1~2시간도 채 잘 수 없는 노동강도 때문에 실제로 건강에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약골이 아니었는데도 오로지 수면 부족으로 응급실에 실려갔고, 이후 몇 년간 심한 불면증을 앓는 등 '하리꼬미'가 남긴 생채기가 컸다. 수습을 벗어나도 매일 평균 12~13시간 이상의 업무가 이어졌고 주말에도 모니터링 등 자발적인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수습기자 때 망가진 건강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이 기간을 거치며 '노동 시간이 사람의 삶의 질, 특히 건강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주는지'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다. 2018년부터 일명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서다.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하고 밤 11시까지 취재원과 술을 마시는 비인간의 세상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 다소 인간적인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수습교육도 변화했다. 경찰서 숙박 관행이 없어지고 수습기자들도 집에서 자고 출퇴근하며 일할 수 있게 됐다. 어떤 선배들은 "어떻게 수습이 출퇴근을 하느냐"고 혀를 찼지만 그것은 분명 비로소 언론계가, 세상이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주 52시간 근로제 업계 관행 큰 변화
업무 시간으로 실력 평가시대 청산
노무사로 업을 바꾸고 '주 52시간 근로제'의 실체가 내가 피부로 느낀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령 1주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정하기 전에도 68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었다. '하리꼬미'처럼 주 100시간 넘게 일해도 된다는 법은 이 땅에 존재한 적이 없다. 또 전체 노동자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상한의 적용을 받지 않고, 5인 이상 사업장이라 해도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특별연장근로, 감시·단속적 근로자 등 1주일에 52시간 넘게 근무할 수 있는 예외는 넓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주 52시간 근로제'를 계기로 당시 나의 일상과 업계 관행이 확 바뀌었고, 국내 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이 유의미하게 줄어든 까닭은 법의 자구 이상의 '선언적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단순히 일터에 할애하는 시간만으로 실력을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선언,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사회로 진입하자는 선언, 인간성을 상실한 노예적 노동에서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인간적 노동으로 나아가자는 선언. 많은 사람이 근로시간과 관련 없는 회식도 저녁에서 점심으로 옮기는 등의 노력을 통해 법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합심했던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일·생활 균형 추구 사회 선고 때문
또다른 전혀 반대적 의미 선포 앞둬
정부 정책, 인간다움 도외시 않기를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전혀 반대적 의미의 선언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의 단위를 기존 '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할 수 있도록 개편하여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 또는 80.5시간(7일 기준) 근무가 가능하도록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월 이정식 장관이 급히 발표했다가 '대통령과 사전 협의되지 않았다'라며 해프닝으로 끝난 안과 동일한 내용이다.
이것이 혹 내가 몸소 경험했던 건강과 행복을 해치는 노동으로의 회귀라는 선언이 되지는 않을지 의심스럽다. 산업재해 관련 법령은 주 52시간 또는 6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이 뇌출혈 등 심혈관계 질환 발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기준을 고시하고 있다. 근로시간은 현장의 생산성·효율성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가족 등 인간관계, 자기계발과 행복 등 사람의 인생 전반과 밀접하게 관련된 주제다. 그 여파가 법의 자구 이상의 막대한 사회적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부디 현 정부가 정책 추진에 있어 인간다움, 건강과 행복을 도외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은수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