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석(除夕)이며, 내일이 동지(冬至)다. 동지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정확히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옛날 사람들은 동지를 태양이 다시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이고 제사를 지냈다 한다. 동지는 장지(長至)·단지(短至)·비동(肥冬)·희동(喜冬)·이장절(履長節)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아세(亞歲) 곧 새해에 버금가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팥죽을 쑤어먹었다. 24일을 크리스마스이브라고 부르는 것처럼 동지나 한 해 마지막 날을 제석, 즉 섣달그믐이라 했다.
동지에 대한 최초 기록은 '상서(尙書)'이며, '예기'에도 나온다. 동지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고려시대에 등장하는데, 고려 말 학자요 문인이었던 이제현(1287~1367)의 '익재집'에 동짓날에 두죽(豆粥)을 먹었다는 대목이 있다. '익재집'에 따르면 동지에 가족들이 모여 두죽을 먹고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술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동지를 기리는 풍습이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지 팥죽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는데, '동국세시기' 11월 월령 조에 동지에 보면 적두(赤豆) 즉 붉은 팥으로 죽을 끓이고 여기에 찹쌀로 새알 모양의 단자(團子, 새알심)을 만들어 죽 속에 넣고 끓여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의 기운이 가장 세고 밤이 긴 날 붉은색의 음식을 먹음으로써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쫓고 액을 막아보자는 의미라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그 기원은 6세기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온다. 공공씨(共工氏)에게 못난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지에 죽어 역귀(疫鬼)가 됐다 한다. 역귀가 된 아들이 적소두 즉 붉은 팥을 두려워하였기에 이때부터 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고 역귀들을 물리치고 액을 몰아냈다고 한다.
설날 떡국, 대보름날 오곡밥, 추석 송편, 동지 팥죽은 대표적인 우리나라 절기음식이다. 동장군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물가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경제가 어려운 이때 모든 어려움이 싹 물러가기를 기원하면서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모여 따끈한 팥죽 한 그릇을 나누는 훈훈한 세모가 됐으면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