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여름 방송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일으킨 반향은 대단했다. 자폐인을 향한 부당한 편견과 불편한 시선을 반성하는 사회적 각성이 고조됐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공식 병명으로 천차만별인 자폐 증상에 대한 이해도 넓혔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우영우'가 너무 특별해 발달장애인들을 대변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우영우 판타지가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끔찍한 현실을 가릴까봐 걱정했다. 우려한 대로 현실은 악몽이다.
인천지방법원이 21일 고등학생이 학교장을 상대로 낸 심리치료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학생은 교실에서 약을 먹이려는 여교사에게 "먹기 싫다"며 가슴을 손으로 밀쳤다. 교사가 이 사실을 알리자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학생에게 출석정지 5일을 결정했고, 교사가 처벌을 원치 않자, 처분을 유보했다.
학생 가족이 불복하고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처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학생 편에 섰다. 학교는 명확한 처분을 위해 교권위를 다시 열어 4차례의 심리치료를 명령했다. "강제추행, 상해, 폭행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이유였다. 학부모들은 이 또한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냈지만, 인천지법은 학교 손을 들어준 것이다.
판사는 "학생의 장애를 고려하면 성적 목적과 의도가 없다"며 부모의 주장을 인정했다. 그래도 "교사의 가슴을 손으로 밀친 것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성적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4살 수준 지능인 학생의 범죄 혐의를 인정할 수 없지만, 교사의 현실적인 피해는 인정한다는 판결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가해자는 없지만 피해자는 있다'인데, 판사의 고민이 느껴진다.
학생 측은 항소 입장을 밝혔다. "밀치는 행위는 발달장애인의 거부 의사 표현"이라 했다. 이런 식이라면 수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성추행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항변으로 들린다. 교사도 딱하다. 실제로 느낀 성적 수치심을 감당할 수 없어 최소한의 처분을 요구했는데 일이 커졌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학교는 죄가 없다. 발달장애인 교육 현장을 건강하게 지켜 낼 제도와 의식의 공백, 즉 우리 사회가 유죄이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우영우 판타지가 이런 악몽 같은 현실을 왜곡할까봐 걱정했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