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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마주했던 시간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수 없다. 마무리는 새로운 시작이지만, 다가올 시간은 이미 마무리 안에 결정되어 있다. 마무리는 새로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그리고 이 새로운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까? 이 질문은 곧장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나의 가정과 삶의 터전,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시간을 보냈으며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의 질문이 그것이다.

내 존재에 대한 물음은 삶의 터전과 실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모든 사회생활과 경제 활동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 두 질문은 사실 하나의 물음이다. 실존적으로 또한 공동체적으로 나는 어떻게 살았으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질문은 곧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의 모습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이 질문은 또한 나와 우리가 마주할 내일을 결정하는 물음이 된다. 그래서 한 시간을 마무리하는 이때, 다가올 시간을 결정하기 위해 이렇게 물어야 한다.  


마무리는 새로운 시간 의미를 부여
자기 존재 유지 못한다면 '슬픈 삶'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삶을 위한 외적인 조건이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다움의 품위를 지킬 수 없다. 품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니 그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간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헛된 몸부림은 오히려 품위를 잃게 만든다. 그러니 무엇이 사람다움인지, 어떻게 해야 사람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답기 위한 앎을 포기하면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그 앎은 물질적 지식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앎이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맞이하는 시간 앞에서 사람답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모든 삶은 힘에의 의지를 지닌다. 모든 존재는 자기 존재를 지키려는 의지를 지닌다. 그 힘은 남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힘이다. 그 힘을 가지고 내 삶과 존재를 지켜내고 드높여야 한다. 그 힘으로 내 삶을 가로막는 외부의 적에 맞서야 한다. 자기를 유지하지 못하면 사람다움을 잃고 괴물이 될 것이다. 조금은 비겁해도 좋지만, 그래도 괴물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삶이란 참 버겁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지킬 것은 지켜야 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기에, 버리지 못하기에 슬픈 삶을 살고, 지켜내지 못하기에 품위를 잃고 비굴하게 살게 된다.

우리가 맞서야 할 敵 내 안팎에 있어
절제하지 않는 사람은 괴물로 변해
인간다움 품위 지키는 새로움 맞자


우리가 맞서야 할 적은 무엇인가? 그 적은 내 안에도 있고 내 밖에도 있다. 내 안의 적이 알지 못하는 욕망에 휩싸여 절제하지 못하는 마음,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지 못하는 무지에 있다면, 밖에는 나의 사람다움을 막는 수많은 공동체적 적이 있다. 그들은 한 줌의 기득권과 특권을 남용하는 무리들이다. 무엇보다 법기술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공동체 안에서의 사람다움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그것을 고발하고 비판해야할 지식과 언론이 온갖 현란한 기술로 이 악을 포장한다. 부패한 권력이 사회를 폐망시킨다. 그들에 맞서지 못하면 사람다움의 품위를 지키지 못한다. 또한 내 안의 무지와 욕망에 안주할 때 나는 괴물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끊임없이 추동하는 '더 많이'의 논리에 함몰되면 품위는 사라진다. 절제하지 않는 삶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성공을 지향하는 생각에 휩싸여 무조건 달리기만 하면 우리는 폭주하는 괴물이 된다. 돌아보면서 사람다움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이 기회를 놓치면 사람답기 위한 시간을 잃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힘은 이 괴물을 깨는 힘이다. 괴물은 내 안에도 있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도 있다. 지금 마무리 짓고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이 괴물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무지는 우리를 괴물로 만든다. 맞서지 못하면 우리는 노예가 된다. 앎의 힘과 맞서려는 마음으로 해방과 구원을 찾아가야 한다. 그 힘으로 지나가는 삶을 마무리하면서 사람다움을, 인간다움의 품위를 지켜내는 새로움을 맞이할 시간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