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지난 22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1심과 항소심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의료 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을 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의료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때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으로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다며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한의사들은 환호하고 의사들은 반발한다.
한의사협회와 의사협회의 의료용 진단기기 갈등은 의료계의 해묵은 고질병이다. 의사들은 한의사의 첨단 진단기기 사용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한방 의료행위에 초음파, X레이,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양방 진단기기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 양방, 한방의 학문적 원리와 의술 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진단기기는 서양의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이다.
한의사협회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현대 한의사들은 한의대 6년 과정을 통해 한의학과 양의학 교과과정을 섭렵한 전문 의료인으로, 진단기기 활용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한의사들은 한의학을 침과 뜸, 한약으로 인식하는 정부와 서양의학계의 편견에 진저리친다. 코로나19 대란 때 교육받은 일반인도 가능했던 검체채취, 역학조사에도 한의사 투입을 망설였던 정부를 성토했었다. 의사협회가 진단 시장 독점을 위해 한의학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킨다고 의심한다.
체성분을 알려주는 스마트 워치를 비롯해 자가 신체 진단이 가능한 첨단 웨어러블 장비들이 속속 개발되는 시대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진단기기가 간소화되고 필요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대법원이 "의료공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의료행위 기준이 필요하다"며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용한 배경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료 행정이 절실하다. 오랜 세월 한의사와 의사를 구분하는 이원적 의료체계를 유지한 탓에 의료 시장 자체가 분리됐다. 시장 중심적인 의료 행정으로 인해 양방에서는 소아과, 내과, 산부인과, 외과 의사 씨가 말랐다. 한의사의 진단기기 접근을 막아 한방의료 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막는다. 국민에겐 치명적이고 불편한 일이다. 대법원 판결로 정부가 숙제를 떠안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