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프랑스 경찰이 세계정상급 체스선수 '이고스 라우시스'(당시 58세)를 체포했다. 게임 중 부정행위를 한 혐의다. 경찰은 그가 대회장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을 공개했다. 인공지능(AI) 도움을 받았다는 거다.
라우시스는 1992년 체스연맹 최상위선수 칭호인 '그랜드마스터'가 됐다. 수년간 라트비아, 방글라데시, 체코 국가대표를 지냈다. 전성기를 지났어도 경이로운 성적을 이어갔다. 30대 후반이면 쇠퇴기에 접어드는 '에이징 커브(Aging Curve)'를 비웃듯.
연맹은 뭔가 이상하다고 봤다. IT기기 활용을 의심하면서 증거 확보에 나섰다. 수개월을 따라다녔고, 인권침해 논란을 무릅쓰고 대회장 화장실에 CCTV를 설치했다. 라우시스는 화면을 지켜본 뒤 두고 온 휴대폰이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했다. 인공지능 체스 프로그램을 이용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그는 선수 생활을 전격 은퇴했다.
중국 바둑계가 '치팅 논란'에 휩싸였다. 치팅은 바둑, 장기, 체스에서 인공지능(AI) 도움을 받는 부정행위를 말한다. 발단은 지난 21일 온라인으로 열린 춘란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 4강전이다. 세계랭킹 4위 리쉬안하오(27)가 세계랭킹 1위 신진서(22) 9단에 완승했다. 신진서는 무력했고, 리쉬안하오는 실착이 없었다.
대국 뒤 중국 국가대표 양딩신(24)이 리쉬안하오의 부정행위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춘란배 8강전에서 리쉬안하오에게 패한 양딩신은 SNS에 "리쉬안하오와 20번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신호가 차단된 대국장에서 화장실에 가면 안 되고, 시간 제한도 없이 하루 한판씩 두자는 게다. "기보를 공개해 평가도 받자"며 "만약 내가 누명을 씌운 것이라면 은퇴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2년 전 중국 랭킹 20위권이던 리쉬안하오는 무서운 상승세로 2위가 됐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실력이 급상승하는 바둑 특성을 거스르는 특이 사례다. 신진서와 대국에서 AI 일치율이 85%나 됐다. 최정상급 선수들 평균이 70%다.
물증은 없고, 중국기원은 리쉬안하오를 감싼다. 그는 지난해 커제 전에서도 부정 의혹을 샀다. 수천 년 이어온 신선의 도(道)가 위태롭다. 시비가 가려져야 한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