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규는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첫 시집을 낸 조숙한 문청(文靑)이었다. 시집 '영(靈)의 유형(流刑)'(1960)은 고교 시절 은사였던 김창직 시인이 제목을 지어주었는데, 김대규 시의 원체험이 이 시집에 서려 있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그의 베스트셀러 '사랑의 팡세'가 암시해주듯이, 먼저 그는 혼신을 다해 '사랑'의 의미를 사유했던 사색가였다. 또한 '흙'이라는 원형적 속성을 끌어와 생태적인 사유를 우리 시단에 뿌린 시인이었다. 이 두 가지 기둥은 어찌 보면 보편적 사유의 결정(結晶)이요, 어찌 보면 우리 시대에 결핍된 속성에 대한 시의적 제안이기도 하였다.
그는 '사랑' 의미 사유했던 사색가
'흙'이란 원형적 속성 시단에 뿌려
김대규가 노래한 주제 가운데는 어머니에 대한 아들로서의 사랑, 자녀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가장 뚜렷한 실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보편적 에로스의 문제도 시적 발상과 표현의 주형식이 되고 있다. 이처럼 김대규의 시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발원하여 가장 먼 곳으로 퍼져가는 에너지를 품은 채 사랑의 경험과 사유를 담은 지성적 기록의 범례로 남을 것이다.
또한 김대규는 '흙의 사상'과 '흙의 시법' 등의 시집을 통해 흙이라는 원형 상징을 탐구하였다. 그의 시는 흙으로 비유되는 자연 사물의 이미지를 개성적으로 포착하여 그 안에 자신이 발견한 삶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이치를 이입시키는 방법으로 일관되게 생성되었다. 그는 '안양'이라고 하면 문인들이 자신을 떠올린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그 점에서 그는 천생 '안양의 시인'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고마운 고향 안양에서 그는 평생을 살았다. 이렇게 고향 안양을 노래한 그의 회귀의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흙이라는 심상을 만나 가장 근원적이고 생태적인 차원을 이룩해간 것이다.
최근 안양시에서는 김대규 시인의 문학적 족적과 성과를 모아 일반인들에게까지 알린다는 취지로 '김대규문학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원 스승이었던 편운 조병화 시인은 일찍이 "그는 자기의 고향인 안양에 활동의 거점을 두고 한국 현대시의 유동에 대한 민감한 주시와 해와 현대시의 물결에 대한 예리한 관심을 계속 펼쳐나가면서 먼 미래에 그의 견자를 내다보고 있었다"라고 하였다. 말할 것도 없이, 그를 향한 이러한 예우는 그가 시를 향한 한없는 자의식을 통해 운명적 시인으로서의 삶을 고향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 시편들 존재자 향한 사랑 토로
미래에 대한 실존적 의지까지 노래
그만의 심원한 형상 기억되길 소망
단순한 나르시시즘을 넘어 어떤 존재론적 기원을 탐구하는 품을 깊고 넓게 보여준 김대규의 고향 시편들은 그 점에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자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토로하고 앞으로 펼쳐질 시간에 대한 실존적 의지까지 노래한 결과이다. 존재론적 기원의 탐색을 통해 그 스스로에게는 중요한 인생론적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내고, 우리에게는 진정성 있는 주체가 들려주는 자기 탐색의 목소리를 듣게끔 해준 것이다. "나의/고향은/급행열차가/서지 않는 곳//친구야,//놀러 오려거든/삼등객차를/타고 오렴."('엽서') 이처럼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안양에 삼등객차를 타고 오라는 엽서를 친구에게 보내는 시인의 마음은 스스로의 터전을 성소(聖所)로 자리매김한다. 아득한 세월을 지나 긍정의 언어로 거듭나는 과정을 아름답게 노래한 김대규 시인이 사랑과 흙의 사제(司祭)로 남아 그만의 존재론적 기원에 대한 사유, 사랑의 에너지를 통한 심원한 형상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기를 온 마음으로 소망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