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901001112700053041

500㎏ 넘는 황소가 미친 듯 날뛴다. 날렵한 투우사의 하체가 리듬을 타고, 흥분한 관중은 괴성을 지른다. 피로 얼룩진 광기(狂氣)는 절정으로 치닫고, 창칼에 찔린 등은 검붉게 물든다. 성난 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투우사를 향해 재돌진한다. 목표물은 희미해지고, 본능적 공포에 몸서리친다. 기진(氣盡)한 숨, 풀 죽은 기색에 투우사는 더 맹렬해진다. 예봉을 꺾고 희롱하며 쉴새 없이 찌르고 헤집는다.

한발 물러선 소는 숨을 고르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생과 사를 가를 마지막 합을 잠시 미루고 휴식을 취한다. 대개는 자신이 뛰쳐나온 출입구 주변 공간에서다. 벽을 등지고 다시 상대를 노려본다. 짧은 안식으로 힘을 낸 투우는 앞발을 박차고 맹렬한 기세로 나아간다. 그리고 최후를 맞는다. 안식처(安息處) 또는 피난처를 뜻하는 스페인어 '케렌시아'는 죽음을 앞둔 투우의 슬픈 노래다.

젊은 시절 스페인을 찾았던 작가 헤밍웨이는 투우에 푹 빠졌다. 전역을 돌며 경기를 보고, 유명 투우사와 교유했다. 어느 날 칼에 급소를 맞은 소가 죽기 전,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정한 공간을 찾아 숨을 고르는 것이다. 그의 작품 '오후의 죽음'은 투우, 투우사, 그리고 투우마니아(Mania)의 세계다.

시간을 쪼개는 건 인간만이다. 연말, 연시는 본디 다를 게 없는데 자못 비장한 얼굴들을 하고 제야를 맞는다. 전날은 일몰을 보고, 다음날엔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빈다. 마치 다른 태양신을 영접하는 것처럼.

연말엔 피로가 쌓이기 마련이다. 한해 고생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시·공간이 필요하다. 번잡해도 고향 마을, 휴양·관광지를 찾아 나서는 까닭이다. 심신(心身)을 내려놓을 안식처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빼어난 경치는 눈을 맑게 하고, 낯선 땅에서의 조우(遭遇)는 마음을 들뜨게 한다. 뭉친 근육, 쌓인 응어리를 풀어내야 새해가 가볍다.

임인년을 보내고 계묘년을 맞는다. 유례없는 물가 폭등, 고금리, 한파로 겨우살이가 힘겹다. 동트기 전, 가장 어둡다. 섣달 냉기가 한여름 폭염(暴炎)을 잉태한다. 겨울 한파는 삼복더위가 뱉어냈다. 참고 견뎌야 꽃을 볼 수 있다. 냉주(冷酒) 파티가 끝났다면 어디든 떠나 보자. 나만의 안식처라면 더 좋을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