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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2022년 한 해를 돌아보니 여러 일들이 있었다. 평생 처음 겪는 일도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3일 이상의 장기 입원이었다. 지난 가을, 알러지 반응이 있고 몸이 안 좋아서 응급실에 갔다. 몇 가지 처치를 받고 좀 나아진 것 같아 집에 가겠다고 했는데 최소 72시간은 상태를 봐야 한다는 의사의 단호한 말에 그대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약한 알러지 반응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증상이었고, 그러다 보니 나도 내 상태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겁이 나기도 했다.

요즘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라고 해서 간호조무사와 간병인, 간호사들이 간호와 간병을 통합해서 제공한다.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쳐서 보호자의 상주는 물론 방문도 엄격히 제한됐다. 그나마 응급실에 갈 때 함께 간 사람이 있었지만, 입원 수속을 밟으면서부터는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주말 밤에 급하게 입원하는 바람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갖다주고, 퇴원하는 날 챙겨주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해주는 가족이 고맙다가도 생각지 않게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올해 평생 처음 알러지로 장기입원
이것저것 챙겨준 가족 미안한 마음
누구도 아프지않는 사회로 변해야


누워 있다 보니 아프지 않을 때 읽었던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내용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 책의 저자인 조한진희 작가는 잘 아플 권리, 그러니까 질병권을 주장하면서 ''이상적인 겉모습을 갖춘' 건강한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한 사회적 구조가 아픈 몸을 억압한다'고 지적한다. 어떻게 건강하고 아프지 않은 몸으로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회복되지 않는 아픈 몸으로도 어떻게 온전하고 행복한 삶이 가능한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투병기이면서 질병으로 인한 여러 경험을 함께 이야기하는 이 책은 질병에 걸린 후 완치된다는 예정된(?) 서사 대신 '여전히 투병 중'이고 '병을 지내는 중'으로 마무리된다. 나 역시 호전되어 퇴원하기는 했지만, 알러지 반응은 언제 어떻게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 병과 화해하며 지낼 수밖에 없는 셈이고, 많은 사람들 역시 '서로 다른 몸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아프면 민폐'가 아니라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는 사회로 바뀌어야 할 때는 아닐까?

'아픈 몸'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측면에서 인상 깊었던 인터뷰가 더 있어 함께 소개해보고 싶다. 약점, 못하는 일, 콤플렉스, 장애 등을 극복하거나 감추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도 괜찮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담은 책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저자 사와다 도모히로는 "민폐 끼쳐야 건강한 사회"라면서 "사람들이 일찍부터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타인의 폐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습관을 들이면, 나이를 먹었을 때 주위와 원활한 '민폐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새로운 '소수자 시장'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그의 뒤에는 시각장애인인 아들이 있다. 아들의 핸디캡으로 자기 안의 소수성을 발견하면서 일해온 그는 "모든 일이 무언가 힘든 일이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 구체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손을 내미는 것. 그렇게 제가 지닌 것을 상대방에게 내주고, 반대로 상대가 지닌 것을 받기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새해엔 많은 사람과 도움 공유하며
좋은 것, 좋은 방식으로 나눴으면…


도모히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고령 사회는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 큰일이 날 것처럼 보도하는 많은 뉴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아닌가? 저출산과 노인 빈곤, 생산가능 인구의 부족으로 경제 성장 둔화, 노인복지비 증가로 인한 국가의 재정 부담 증가와 같은 문제점만 듣다가 모두가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그 민폐를 함께 해결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한다.

"도움과 민폐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인생을 포개어 가는 것, 그것이 일하는 것"이라는 일본인 디자이너의 말과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라는 한국 드라마(나의 아저씨) 속 대사는 결국 같은 말이다. 새해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도움 혹은 민폐를 주고받으면서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과 장소에서 좋아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