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101000039200001211

베이비붐 세대가 악동이던 시절, 축구공 하나면 아이들은 행복했다. 가죽 공이 귀했던 시절 고무 공을 차면서도 축구엔 진심이었다. 발 재간이 좋은 아이들은 펠레와 유세비오(에우제비오) 시늉을 내며 단독 드리블에 열중했고, 골키퍼를 보던 아이들은 야신을 흉내냈다. 브라질, 포르투갈, 소련이라는 나라는 몰라도 이름만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축구 전설들이다. 그 중에서도 펠레는 차원이 달랐다. 축구가 펠레였고, 펠레가 축구였다.

축구 황제 펠레가 별세했다. 예고된 임종이었지만 조국 브라질은 슬픔에 잠겼다.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도 국가색인 황금빛 조명으로 갈아입었다. 상징이 상징을 추모하는 야경은 숙연하고 장엄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펠레'는 브라질 자체였던 펠레를 보여준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17세 펠레가 조국에 우승컵을 안기자, 브라질은 잡종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비로소 브라질이 됐다고 한다. 펠레 자체가 국가를 상징한 기관이었다는 증언도 인상적이다.

비판도 있었다. 펠레가 세 차례 월드컵 우승을 이끄는 동안 브라질은 군부 독재로 신음했다. 인종탄압에 저항하고 반전 운동에 앞장섰던 무하마드 알리처럼 펠레가 군부 독재에 맞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화 세력에게 펠레는 독재 정권이 두려워한 유일한 문민권력이었다. 하지만 펠레는 정치와 거리를 두었고, 독재자는 펠레를 능수능란하게 이용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펠레와 갈등했던 감독을 교체한 것도 독재 정권이었다. 그래도 브라질 국민은 펠레의 침묵을 비판하면서도 펠레의 축구는 열렬하게 사랑했다.

축구사에 숫자로 남긴 펠레의 업적 보다도, 지구촌을 축구로 묶어 낸 펠레의 시대가 더 위대하다. 조국 브라질은 축구로 나라를 세운 국부(國父)로, 세계는 20세기 최고의 스포츠인으로 펠레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1974년 은퇴 경기 직후 펠레가 관객들과 함께 연호한 "러브 러브 러브(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가 인스타그램에 그의 유언으로 올랐다. 1940년 브라질 사람으로 태어난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가 2023년 새해 전전날 세계인 '펠레'로 영면에 들었다. 한 시대의 종언을 기리기에 손색 없는 유언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