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_-_경인칼럼.jpg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
새해의 정국은 지난해보다 여야의 대립구도가 한층 격화될 것이다. 내년에 22대 총선이 있고 정국 대치가 완화될 어떠한 구조적, 물리적 요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이후 여야의 격돌은 어느 시기보다 극심했고, 여야 모두 강경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이라고 하지만 강성 지지층에 포획된 정치가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정치가 아무런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여야 정치인들이 정치권력의 탐닉에 동원되는 객체로 전락하다시피한 데다 유권자의 정치적 효능감과 에너지도 고갈된 듯하다. 올해는 기승전 총선으로 도배가 될 것이 뻔하고 한국정치는 한 번 더 퇴행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 자명해 보인다.

금리, 물가, 경기, 빈부심화, 안보위기 등 대내외적 위기가 극한의 상황으로 가고 있음에도 정치는 연초부터 여당의 전당대회에서의 윤심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미시적 정치에 매몰되어 있고, 제1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허우적거리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정치가 자신들의 소명의식을 망각하고 오로지 선거머신으로 전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정치개혁 차원에서 논의되는 제도적 논의들은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법 개정을 통한 선거제도의 혁신이다.  


양당지도부, 공천권 장악 정치인 총선 의식
주류그룹 눈에 들기 위해 정치기능인 전락


권력구조 개편은 수명이 다한 87체제의 종식과 맞물려 있다. 지금의 5년 단임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4년 중임제와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권력구조 개편이 그것이다. 그러나 5년 단임을 4년 중임제로 바꾸면 지금의 정치적 후진성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숱한 요인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한국정치의 모순은 권력구조를 바꾼다고 나아질 수 없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비례대표의 숫자를 늘리고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면 다수의 횡포의 문제를 안고 있는 다수결 정치가 이상적인 합의제 민주주의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순진한 발상이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의 거대양당제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제3당의 출현과 다당제로의 전환이 많이 모색되지만 제3당이 출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다당제로의 전환을 위해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지만 이는 외양만 바꾸는 것으로서 본질적 한국정치의 변화를 견인할 수 없다. 비례대표를 독일 수준으로 늘리는 방안이 정당 이론의 원론적 관점에서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한국에서 비례대표가 독일 수준의 역할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들은 차기 총선에 지역구 출마를 보장받기 위해 진영내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저급한 '문제적' 발언으로 정치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요한 것은 국회를 구성하는 선출직 의원들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구조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유권자가 아니라 편향된 지지층에 종속되는 정치는 문제해결 능력을 결여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제도권에서 공천과 맞물려 있다. 거대양당의 지도부가 공천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선을 의식하는 정치인들은 이들 소수 주류 그룹의 눈에 들기 위해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기능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부분이 한국정치 퇴행의 결정적인 원인이요, 한국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핵심 요인이다.

헌법기관 자각보다 소신 내팽개치기 일쑤
현행 유지 적대적 구조 개선 기대 '모래위 성'


이러한 사실을 뒤로 한 채 언론과 정치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정당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의 파워그룹의 영향력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공천제도의 개혁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공천권을 무기로 정당을 장악하고 공천권을 쥔 이들에게 포획된 정치인들은 헌법기관으로서의 자각과 자부심보다 공천을 따내기 위하여 소신과 지성을 내팽개치기 일쑤다. 지금의 여야에서 공히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 행태들이고 퇴행의 본질들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감히 공천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의원들을 찾을 수 없지만 공천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한국정치의 적대적 구조가 나아지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래위에 성을 쌓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