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구는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지역 내 불법 현수막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보행안전을 해치는 현수막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학교 주변에 무분별하게 부착된 현수막과 불법 광고물 등을 일제히 정비했다. 민·관 합동으로 불법 광고물 근절을 위한 캠페인도 벌였고, 인천 최초로 불법 광고물에 대한 계도전화 자동발신 시스템을 운영했다. 그 결과 불법 현수막 단속 건수가 전년 대비 50만건이나 줄어드는 성과를 냈다. 과태료 부과 건수도 2021년 47건에서 지난해 30건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연수구 주민 절반이 사는 송도국제도시는 국제 행사가 잇따라 열리는 대한민국의 얼굴과 같은 도시다. 이곳에는 지역 정치인의 치적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지정게시대가 아닌 거리 곳곳에 버젓이 걸려 있다. 작년 12월 정부의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정당 명의의 현수막은 게시할 수 있어졌기 때문이다. 현역 국회의원과 당원협의회장 이름으로 설치한 경우 정당현수막으로 인정한다는 이상한 시행령이다. 경기 침체로 어려운 시기에 자영업자의 생계용 현수막은 안되고, 정치활동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인의 '치적 알리기용' 현수막은 아무 곳에나 걸어도 된다는 이해 못 할 법이다.
경기침체 자영업자 생계용 현수막 안되고
정당활동 이유 국회의원것만 버젓이 게시
연수구에는 각 동이 운영하는 행정게시대와 83개의 현수막 지정게시대가 있다. 지정게시대에는 일반 현수막과 정치 현수막 모두 게시할 수 있다. 하지만 법대로 하면 도로변 나무나 가로등에는 정치인의 현수막만 설치할 수 있다. "다른 불법 현수막들은 철거하는데 국회의원 현수막만 왜 그대로 놓아두느냐"는 항변에 공직자들은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들의 항변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도 걱정이다. "법대로 합니다"라는 답변이 부끄러울 뿐이다.
단체장은 임기 동안 주민과 함께 숨 쉬며 지역에서 원하는 현안을 찾아내 정책으로 실천해 내는 책임자다. 항상 주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하는 게 단체장의 숙명이다. 이번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은 주민뿐 아니라 이러한 단체장의 노력을 한순간에 꺾어버린 결정이다. 정당활동이라는 이유로 국회의원 현수막만 거리 아무 곳에나 내걸어도 된다는 시행령은 지자체의 소신 행정에 예외를 인정하는 사례다. 정치인의 현수막을 두고 벌어진 현장 민원이나 법적 충돌 사례는 그동안 차고 넘쳤다. 이제는 국회의원의 정당 현수막만 거리 아무 곳에나 내걸려 있는 풍경에 대해 주민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자치단체장으로 자괴감마저 드는 이유다.
옥외광고물 시행령 주민·단체장 노력 꺾어
"형식적 새해인사·치적홍보 정치시대 갔다"
이제 형식적인 새해 인사 문구와 예산확보 치적을 알리는 현수막 정치의 시대는 지났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지방의 한 도시 의원들이 앞으로 명절 인사용 현수막을 걸지 않겠다고 선언해 많은 주민에게 박수를 받았다. 도시의 안전과 미관을 해치는 거리의 선전성 구호나 치적홍보보다는 지역을 위해 한걸음이라도 더 발로 뛰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차에 커터칼을 가지고 다니며 불법 현수막을 볼 때마다 직접 철거해 화제가 된 서울의 한 구청장도 "이제 현수막으로 정치하는 시대는 갔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연수구에도 서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시야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지정게시대 신청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현수막을 걸거나 정치현수막을 걸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올곧은 정치인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이재호 인천시 연수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