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있는 아들들 말고도 흑산도에서 귀양 살던 정약전 형님, 많은 제자들에게 보낸 글까지 합하여 한문으로 된 글을 한글로 번역하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제목으로 편역하였다. 어느 편지인들 의미 깊고 훌륭한 지혜로 가득차 있지만, 특별히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는 폐족에 처한 아들들이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지니고 학문에 힘쓰라는 간절한 부정(父情)이 넘쳐흘러 우리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반드시 이웃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여 모두가 따뜻하게 살아가도록 이웃을 도와주라는 이야기는 추운 겨울을 이기는 훈훈한 인정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남 도와줄땐 절대 대가 바라지 말고
어려운 사람은 그냥 도와줘야 한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일가들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위에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눠주며 따뜻하게 해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 푼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줘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히 대해야 하고, 우환(憂患)이 있는 집에 가서는 근심스러운 얼굴빛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 고통을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할 것인데, 너희들은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答兩兒)
좋은 일, 착한 일을 넌지시 권하는 아버지의 뜻이 너무나 간절하고 다정스럽다. 이렇게 이웃을 보살펴 준다면 어떤 추위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니, 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는가. 이어지는 편지의 내용은 사람다운 마음을 어떻게 지녀야 하는가까지를 제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런 몇 가지 일도 하지 못하면서 너희들은 어찌하여 여러 일가들이 황급히 달려와 너희들의 위급하고 어려운 일을 도와주길 바라는 것이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나쁜 근성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은혜는 먼저 베풀어야지 남이 베풀어주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음 속에 보답받을 생각을 지니지 말아라. 그들이 돌봐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하여라'. 이 얼마나 훌륭한 마음인가.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저번에 이리저리 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이 얼마나 자상한 이야기인가. 남을 도와주더라도 절대로 대가를 바라고 도와줘서는 안 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그냥 바람 없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다산의 뜻은 참으로 높기만 하다.
서로 보살피면 혹한 이길수 있다는
다산의 높은 뜻… 이런 마음·정신이
가난·추위 극복 위대한 인간의 지혜
매서운 추위를 이기기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서로 도와주고 보살펴준다면 아무리 지독한 혹한이라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다. 이제 소한도 지났다. 대한과 입춘만 지내고 우수만 와도 대동강 얼음이 녹듯이, 추위는 풀리고 봄의 기운이 조금씩 돌아올 것이다. 국가나 사회는 나름대로 어려운 사람들이 추위를 이기도록 도와주어야 하지만, 이웃들이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손길을 넣어주면, 어떤 추위도 이길 수 있다. 200년 전에 자신은 그렇게 어려운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에게보다는 어려운 이웃들을 돌봐주라고 아들들에게 권했다. 이런 마음, 이런 정신이 바로 가난과 추위와 난관을 극복하는 위대한 인간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