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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보호연대가 운영 중인 유기토끼보호소 '꾸시꾸시'에는 총 72마리의 토끼가 함께 살고 있다. 2023.1.15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초식동물 특유의 온화함이랄까요?"

솜털 같은 짧은 꼬리, 똘망한 눈이 매력적인 토끼 '칠라'는 낯선 사람을 무서워한다. 토끼장을 열면 화들짝 놀라 구석으로 숨는다.

15일 토끼보호연대가 운영 중인 수원의 유기토끼 보호소 '꾸시꾸시'에서 만난 '최고참' 칠라(최소 5살)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사람을 경계했다. 활동가가 손을 살포시 얹은 채 등을 쓰다듬자 그제야 긴장을 푸는 듯했다.

칠라가 이곳에 들어온 건 지난 2020년이다. 지난 2018년 '유기토끼 공원'이라 불린 서울 몽마르뜨 공원에서 다친 채 발견돼 치료 후 재방사됐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또다시 다리가 골절돼 보호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수원 유기토끼 보호소 '꾸시꾸시'
보살핌 속 입양 기다리는 72마리
지자체 사육되다 구조된 경우도
2016~2020년 총 1605마리 버려져
반려동물 등록제 대상 확대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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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라는 지난 2018년 서울 몽마르뜨 공원에서 발견됐다. 치료를 마친 뒤 재방사 됐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또 다시 다리가 골절돼 이 곳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2023.1.15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꾸시꾸시에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식구들이 많다. 총 72마리 토끼가 살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 토끼들이 살았던 환경은 제각각이다. 한가지 공통점은 '길에 버려진 경험'이 있고 모두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었다'는 점이다.

'토끼 유기'는 다른 반려동물들의 유기와는 양상이 다르다. 보통 개와 고양이는 개인이 키우다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토끼 유기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발생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꾸시꾸시에서 보호 중인 토끼 중 25%는 지자체의 책임에서 비롯됐다.

이른바 '토끼섬'으로 불리던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구조해온 토끼가 4마리가 있다. 토끼보호연대는 올해 3월까지 센트럴파크에 남은 10여마리의 토끼도 마저 데려올 계획이다.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토끼를 사육하다가 개체 수가 늘자 무료 분양을 진행해 비난을 샀던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서 데려온 토끼는 14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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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살이 된 '뭉게'는 서울 배봉산 둘레길에서 발견됐다. 폭우 속 생사의 기로에 놓였지만 꾸시꾸시에 입소해 치료를 받았고, 현재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한 입양 절차를 밟고 있다. 2023.1.15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계묘년인 올해 토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토끼보호연대는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관심이 많아진 만큼, 수요가 많아질 것이고 그만큼 쉽게 버려지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펫숍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롭이어토끼의 믹스종이 최근 꾸시꾸시에 들어왔다. 축 처진 귀가 특징인 롭이어는 품종묘다. 롭이어 믹스종이 꾸시꾸시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동짓날(12월22일) 이곳에 입소해 '동지'라는 이름을 얻은 이 토끼는 눈에 백탁현상이 있고 왼쪽 귀에는 상처가 남았다. 김지수 토끼보호연대 활동가는 "한번 유행이 쫙 돌면 그 종의 토끼가 많이 버려진다"며 "숍에서는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통되는데 오히려 많이 버려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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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동짓날 이곳에 입소해 '동지'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토끼는 한쪽 눈에 백탁 현상이 있고, 귀에도 상처가 나 있다. 2023.1.15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동물자유연대의 '2016~2020 유기 유실 동물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 5년간 1천605마리의 토끼가 버려졌다. 동물보호단체는 토끼 유기를 막기 위해선 반려동물 등록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무분별한 판매, 무책임한 유기를 막을 수 있고 최소한 개인이 토끼를 유기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다"며 "공공장소에서 관상용으로 동물을 기르는 지자체에 대한 제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