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민담 한토막이다. 미복잠행에 나선 임금이 한 고을을 지나던 중 제사상 앞에서 상주가 노래하고 여승은 춤추며 노인이 탄식하는(喪歌僧舞老人嘆) 기괴한 광경을 목격했다. 임금이 노인에게 연유를 물었다. 노인이 답하길 오늘이 죽은 아내 제삿날인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며느리가 머리카락을 팔아 제수를 마련해 면목없어 탄식하니, 아들이 노래하고 며느리가 춤을 추며 자신을 위로하는 중이라 했다.
임금이 크게 감동해 아들에게 곧 치러질 과거시험 응시를 권했다. 아들이 과거에 응시했는데 시제(試題)가 '상가승무노인탄', 즉 자기 집 제삿날 풍경이었다. 당연히 장원으로 급제했고 높은 벼슬에 올라 잘 살았다고 한다.
제사를 통치 수단으로 삼은 유교의 나라 조선의 전형적인 효행설화인데, 옛날 옛적 이야기다. 제수 마련을 위해 머리카락 자를 며느리가 있을 리 없고, 있어도 이상한 시대이다.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던 여성들도 구세대가 됐다. 2017년 청와대 홈페이지엔 제사를 법으로 폐지하자는 국민청원이 올랐다. 무엇보다 제사를 전승하려는 세대간의 의지에 격차가 크다. MZ세대의 2, 3세 시대에는 제사가 돈 주고 체험하는 전통행사가 될지도 모른다.
베이비붐 세대까지는 제사 문화에 진중한 편이지만, 형식의 파괴는 과감하다. 4대 제사가 3대 제사로 간소화되고, 아들이 없는 집에선 딸이 제주(祭主)를 맡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 추석 때 성균관이 파격적인 '차례상 표준안'을 공표한 것도, 제사 문화를 전승하려 격식을 포기하는 고육지책으로 보였다.
그래도 축적된 문화의 저력은 여전하다. 오는 주말 설 연휴를 앞두고 제수와 명절 선물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의 발길로 전통시장과 쇼핑몰이 붐빈다. 추석과 설 명절엔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모처럼 모이는 가족들의 상차림을 위해 전 국민이 지갑을 연다. 일 년에 두 번 전 국민이 물가 체험을 통해 살 만한 시절인지 판단한다. 정부가 명절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곡소리가 난다. 올라도 너무 오른 물가 탓이다. 4인 가족 기준 설 차례상 비용이 전통시장 25만4천500원, 대형마트 34만원이란다. 봉지에 담긴 간편식으로 차례상을 차리는 경향이 뚜렷하단다. 고금리, 고물가가 제사 문화 퇴조에 한 몫 하는 설 대목 풍경이 애달프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