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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적과 흑'(1830)은 격동의 프랑스 왕정복고기 야심찬 청년 줄리앙 소렐의 사랑과 야망과 좌절을 다룬 작품이다. 고전적 명작으로 우리식으로 환산하면 조선의 23대왕 순조의 재위기간(1800~1834)에 발표된 소설이다. 소설은 본명이 앙리 베일(Henry Beyle)인 스탕달 자신의 정치적 이념 즉 나폴레옹 숭배와 혁명적 열정을 다룬 작품이다. 이는 나폴레옹을 우상으로 여기며 계급적 한계를 넘어 출세와 입신양명을 꿈꾸는 인물인 주인공 줄리앙 소렐의 모습을 통해서 표출된다. '적과 흑'을 발표하기 이전인 1816~1818년 사이 스탕달은 이미 '나폴레옹의 생애'를 집필하고 있었다. 그의 나폴레옹 전기는 스탕달의 사후에 출판된다.

'적과 흑'은 1827년 실제로 벌어진 치정사건을 신문에서 보고 이를 소설화한 것인데, 이 작품은 1830년 7월 혁명의 와중에 발표되었다. 작품은 신분제 사회의 질곡을 뚫고 자아실현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사랑마저 이용하는 평민(그는 제재소 목수의 아들이다) 청년의 실패가 예정된 도전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자신이 가정교사로 있던 레날 시장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다시 라 몰 후작의 비서로 일하다 그의 딸 마틸드와 정을 통하고 임신을 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줄리앙은 마틸드의 환심을 사고 질투심을 일으키기 위해 페르바크 원수의 부인에게 거짓 편지를 보내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는데 여기서 묘사된 심리묘사나 연애의 전술과 책략이 실로 압권이다. 연애의 지침, 정석으로 삼아도 될 정도다.

그런데 이제 이런 연애 교과서와 소설이 더 이상 필요하지도 읽히지도 않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날이 갈수록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AI 기술 때문이다. 올해는 한층 더 발전된 딥 러닝 AI모델(GPT4)이 출시될 것이라 한다. 1조개가 넘는 신경망 회로로 신의 경지에 이르는 특이점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의 한 중소도시에서 AI를 통해 중매를 했는데 그 효과가 매우 좋아 5년간 845쌍의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이제 AI가 사람의 속마음, 감정, 취향까지 파악하는 시대가 됐다. 이러다 연애소설이 사라지고, AI가 중매에 주례까지 서는 당혹스런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