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쏘공'은 우리들에게 단순한 소설이 아닌 저항의 서사이며, 통과의례였다. 그러므로 1980년대를 관통해온 우리세대에게 '난쏘공'은 질풍노도의 청춘시대를 결정짓는 원형적 기억이자 정치적 감수성의 밑바탕을 이루는 책이라 해도 될 것이다.
청춘시대 정치적 감수성 밑바탕 이뤘던 책
국가권력 공포 극에 달했던 유신시대 초판
'난쏘공'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고전은 읽을 때도 고전하지만, 읽지 않아도 평생 고전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고전인데 '난쏘공'이 꼭 그랬다. 작품의 행간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노동자·도시빈민의 참혹한 삶이 불편했고 당황스러웠으며, 12편의 연작으로 이뤄진 여러 겹의 복잡한 구조가 신입생의 짧은 문해력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부지 문청시절에는 작가의 계급의식이 철저하지 못하고, 투쟁성과 서사의 선명성이 부족한 동화와 같은 서사라는 투정을 부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회변혁의 열정으로 가득한 청춘의 오독이었다. 이런 편향은 후일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정화진의 '쇳물처럼', 방현석의 '새벽출정' 등 같은 선명한 작품들 골라 읽기로 나갔던 것이다. 이런 관성은 내처 이북명의 '오전3시'와 '질소비료공장', 김사량의 '토성랑'처럼 일제강점기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을 그린 작품들에 대한 관심으로, 연구로 발전하게 됐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들 작품들보다 '난쏘공'이 오히려 더욱 오래, 더 넓게, 더 많이 읽힌다.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나 새로운, 아니 늘 새로운 옛것을 고전이라 하고 이를 고전의 본질이라 한다면 '난쏘공'은 확실히 고전이다. 고전들은 특유의 항상성과 불멸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 작품들이 인생과 시대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으며, 또한 모종의 핵심적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남미의 처참함 복잡한 방식 서사 전략
산업현장 노동자들 죽는 열악한 현실 여전
'난쏘공' 초판이 나온 것은 정치적 압제와 국가권력에 대한 공포가 극점에 이르렀던 1978년 유신시대였다. 체포와 구금이 만연했고, 작가 조세희의 말대로 "비상계엄과 긴급 조치가 멋대로 내려지는, 그래서 누가 작은 소리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말만 해도 잡혀가 무서운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시대였다. 이런 상황이기에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현실의 객관적인 반영이라는 직접성 대신, 남미의 처참한 현실을 판타지로 버무린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같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방식의 서사 전략이었다. 작품 속 난장이 일가는 1970년대 정치적 억압과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대 소외계층의 표상이자 알레고리다. 그리고 작품의 안과 밖이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씨의 병'처럼 연결되는 정교한 장치와 높은 문학적 완성도로 인해 1996년의 100쇄를 넘어 2022년 320쇄에 148만부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작가의 말대로 개혁과 형식적 민주주의로 인한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저지'된 채 지금도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열악한 현실이 여전하다. 그러는 한 '난쏘공'은 계속 읽히고 신화는 지속될 것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