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쿠데타 정권이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빚어진 현대사의 비극이자 분수령이다. 유혈이 낭자했던 현장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됐다. 전두환 정권의 통제와 감시에도 광주의 비극을 알리는 사진과 동영상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사진과 동영상에서 총검과 진압봉으로 무장한 계엄군은 군사 정권의 분신으로 깊이 각인됐다. 광주 시민들의 자위적 대응에 희생된 군·경은 거대한 분노에 묻혀 잊혔다.
지난 17일 국립현충원 특전사 묘역. 5·18 3대 단체인 부상자회·유족회·공로자회 대표들이 특전사동지회 간부들과 함께 광주현장에서 희생된 계엄군과 경찰 묘소를 참배했다. 시민군과 계엄군이 생사의 경계를 넘어 43년 만에 화해하는 자리였다. 5·18 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육군 중위 최연안의 묘'를 어루만지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군인의 숙명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엄군으로 광주에 동원된 군·경 사망자들을 5·18 희생자로 품어 준 것이다.
87민주화 이후 광주를 치유하려는 국가와 국민의 노력이 멈춘 적이 없었다. 국가와 정부는 법으로 5·18 정신을 기렸고 피해 보상에 만전을 기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주와 인권의 시발점으로 5·18을 격상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는 네 번이나 광주를 찾아 아버지 대신 사죄했고, 5·18 유공자인 박남선씨는 노 전 대통령을 문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시민들과 함께 제창했다. 5·18은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로 진영을 초월해 국민의 역사로 승화되고 있다.
5월 단체들의 계엄군 묘소 참배는 권력의 흉칙한 폭력으로 갈라졌던 국민이 용서와 화해로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적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지만원식 시대착오자들이 헛소리를 해대고, 5·18을 독점하려는 진영의 소유욕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불행했던 역사 앞에 희생자였던 국민들이 써내려가는 역사적 화해 앞에선 가소로울 뿐이다. 사과 없이 떠난 전두환은 역사적 오명으로 영원한 패자가 되었다. 국민은 언제나 역사의 주체로서 위대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