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 유형을 3가지로 나누었는데,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이다. 여기서 노동은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활동을 가리키고, 작업은 사물을 제작하는 활동을, 행위는 인간관계에서 수행하는 활동으로 정치 활동을 포함한다. 아렌트는 고대와 중세시대에 노동은 하층민이, 작업은 장인이, 행위는 상류층만 했으며, 산업혁명 이후부터 인간은 신분 구분 없이 생존을 위한 노동만 하는 삶으로 전락했다고 보았다. 노동만 하는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에 머물렀기 때문에 제2차 대전에서 약 600만명 유태인을 학살하는 비극이 초래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노동, 작업, 행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은 노동, 취미로 물건 만들거나 악기 연주하는 활동(작업)과 인간관계와 사회를 유지하는 활동(행위)을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 개혁 권고안을 따져볼 때, 이 권고안이 노동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도 함께 하는 인간의 조건을 얼마나 충족시키는지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인 자기계발 성과 두려움 갇혀
노동시간뿐 아니라 여가때도 강요
젊은이들 워라밸 중요시하기 때문
우리는 노동활동을 언제나 최우선의 가치로 여긴다. 노동 중심 가치관이 확립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노동은 하층민이 하는 '고통스러운' 활동이고, 노동하지 않는 '여가(leisure)'는 상층민이 누리는 것으로서 이들을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노동은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최소한의 노동을 하려고 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보방의 조사에 의하면 1700년에 농민은 연간 약 180일 일했다. 2021년 우리나라 연평균 노동시간이 1천915시간으로 약 239일 일한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적게 일한 셈이다.
그런데 18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은 '신성한' 것으로 변화한다. 노동 중심 가치관이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영국에 인클로저(enclosure)가 생기면서 토지를 잃은 빈민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빈민법'이 16세기에 제정되었다. 인클로저는 소규모 토지를 합병하여 대규모 농장을 만드는 자본주의화인데, 빈민법에 따라 강제 노역을 하지 않는 빈민은 감금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이 법의 별명이 '피의 입법'이다. 빈민법만 아니라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근면하게 일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직업소명설'도 노동을 중시하도록 인간을 개조하였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산업화와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면서 노동을 중시하고, 비노동의 여가는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하였다.
인간의 3가지 활동 조화 이루는지
정부 노동개혁 시점에 생각해봐야
미국 철학자 조안 시울라는 21세기에 노동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20세기 말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경쟁과 시장 우위 논리가 가속화되고 노동 유연화로 안정된 직장이 감소하면서,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기계발하여 성과를 내야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노동한다. 자기계발은 단지 노동시간뿐만 아니라 여가시간에도 강요된다. 젊은이들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것은 일을 마치고 자기시간을 마련하여 자기계발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류 역사를 통해 노동에 대한 가치관은 고통스러움에서 신성함으로, 신성함에서 두려움으로 변화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할 미래사회를 맞이하며 나는 어떤 노동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아렌트가 말한 인간의 조건에 필요한 3가지 활동을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가? 정부가 노동 개혁을 서두르는 이 시점에, 새해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생각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이루기 위한 조건과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이현서 아주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