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jpg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다음 주면 입춘(立春), 24절기의 시작이다.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춘하추동 4계절을 나누고 각 계절을 여섯 등분한 날들이다. 해마다 입춘일이면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인다. 24절기는 중국에서 고안한 역법이지만 입춘첩을 붙이는 세시풍속은 한국 고유의 문화이다. 입춘첩에 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타나는 걸 보면 민간과 왕실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세시풍속임을 알 수 있다.

올해의 입춘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설 연휴 마지막 폭설과 강풍을 동반한 한파로 전국이 얼어붙어 있어 더하다. 그런데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말도 있고 '입춘에 장독 오줌독 깨진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입춘 무렵에 매서운 추위가 오는 것은 다반사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입춘 무렵에도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고 강풍이 부는 추운 날씨였다. 입춘은 봄의 시작이라 하지만 여전히 소한·대한 뒤에 오는 겨울의 끝자락이기도 하다.

2월 하순이나 3월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봄꽃이 필 무렵의 특수한 저온현상인 꽃샘추위가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두어 차례 온다. 꽃샘추위가 오면 흔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로 이상 저온을 탓한다. 이 표현은 본래 한나라 궁녀였던 절세미인 왕소군(王昭君)이 화친정책의 일환으로 흉노의 왕에게 시집가서 인질로 살아가야 하는 쓸쓸한 처지를 노래한 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와 사투들 벌여야 했던 전 세계 인류도 왕소군처럼 춘래불사춘의 봄을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봄' 저절로 오는게 아니라 사람이 세우는 것
한해 시작의 큰 마디 특별한 마음가짐 필요


입춘이 아직 봄이 아니라는 건 봄의 다른 절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입춘 지나고 보름 쯤 돼야 눈이 녹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이다. 입춘 한 달이 지나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驚蟄)이며, 또 춘분(春分)은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나야 오니 말이다, 입춘 이후에도 동장군(冬將軍)과 봄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고비를 넘어 한걸음씩 우리 곁으로 왔던 것이다.

봄은 고생 끝에 맞이하는 즐거움의 비유어로 사용한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격려할 때 '대한 끝에 양춘 있다'는 말을 쓰듯이. 사회적으로 봄은 민주화의 비유어이다. 2010년 들불처험 확산되던 '아랍의 봄'은 다시 '겨울'이다. 알제리와 바레인,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군부독재나 왕정에 반대한 민주화 혁명의 물결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일부 국가에서 정권교체로 이어졌으나 대부분 군부독재나 왕정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군부 독재정권과 60년간 투쟁하여 얻은 '미얀마의 봄'도 5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으며, 우리나라의 민주화도 일진일퇴하는 지난한 도정에 있다.

행운·경사, 간절함에서 온다는 생각 엿보여
단순한 벽사진경·기복 넘어선 능동적 태도


입춘문의 내용을 보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기를 비는 내용, 한 해의 풍년, 장수 등을 기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중 가장 많이 쓰는 입춘문은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볕이 좋으니 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나기 바란다는 덕담으로 풀이한다. 그런데 '입춘의 '입'자를 들 '입(入)'이 아닌 세울 '입(立)'를 썼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건양다경'의 '건(建)'자 역시 세운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입춘과 건양은 모두 '세우는' 주체인 사람을 전제로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이 된다. 봄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우는' 것이 된다.

입춘첩의 붙이고 떼는 절차도 있다. 입춘이 드는 시간에 맞춰 대문에 붙이고 다음 절기인 우수 전날에 떼낸다. 입춘은 봄의 시작이면서 한 해가 시작되는 큰 마디이기 때문에 특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여긴 듯하다. 행운과 경사는 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사람, 간절한 사람에게 온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이 엿보인다. 단순한 벽사진경이나 기복(祈福) 행위를 넘어선 능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입춘첩을 쓰고 붙이면서 봄은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이웃들에게 권해야겠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