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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문화평론가
지난 연말, 아르바이트 직원이 마지막 근무 날에 팀원 모두가 소속된 단톡방에 '퇴사 레터'를 보내고 떠났다. '퇴사 뉴스레터 vol.1'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뉴스레터 1번이라는 건 앞으로 2번, 3번이 계속 있다는 뜻인가 싶기도 했고, 짧다면 짧은 기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소회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요즘 유튜브에 퇴사 소회를 올리는 MZ세대가 많다는 기사를 보고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퇴사 뉴스레터까지는 아니어도, 퇴사 소식과 함께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 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짤을 올리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이누야사'의 가영이 캐릭터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퇴사짤'이자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 열풍의 중심에 서 있다.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도비는 자유예요' 짤 역시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니까 언제부터인가 퇴사는 더 이상 '인생의 결단'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로 바뀐 느낌이다.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는 것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다. 바야흐로 '이직이 경력관리가 된 대퇴사시대'라 할 만하다. "한 회사에서 최소한 1년 이상은 버텨야 한다"는 조언은 옛날옛적 '라떼'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용어가 급속히 확산 중이다. 조용한 퇴사는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일만 하고 그 이상의 일은 거부하는 태도를 말한다.

MZ세대, 자유·휴식·새로운 시작…
'퇴사' 10명중 7명 긍정적으로 생각
당장 '원하는 것 해보겠다' 사람 늘어


예전에는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는 것이 골치아픈 상사, 낮은 연봉 등 이유가 '남' 때문이었다면 요즘은 '나'를 위해서라는 대답이 다수다. 작년 6월에 한국리서치에서 최근 2년 이내에 자발적인 퇴사 경험을 한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퇴사'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바뀌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퇴사라는 단어에 대해서 MZ 세대들은 자유, 해방, 휴식, 새로운 시작 등 긍정적인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다. 10명 중에 7명은 퇴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나는 언제든지 퇴사를 결정할 수 있다', '내 기준에 적합하지 않으면 하루라도 빨리 퇴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단다.

또다른 통계청 조사를 살펴보면 작년 5월 기준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6.8개월이고, 퇴사 결심의 가장 큰 이유는 '더 좋은 회사로 이직 준비'가 가장 많았다. '성장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인사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 레몬베이스의 권민석 대표는 "과거 기업은 구성원들이 시키는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만 따졌지만 이제는 구성원들이 회사와 일을 이해하는 정도인 몰입이 곧 성과로 이어진다"며 "몰입할 수 없는 회사라면 개인의 성장을 기대하기 힘드니 떠난다"고 지적했다. 몰입이란 회사의 목표와 비전을 잘 이해하고 하는 일에 빠져드는 것인데, 잘 나가는 스타트업일수록 이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장 대신 안전의 기회를 보장하는 공직 사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하늘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상승의 사다리는 사라진 시대, 열심히 '노오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접근은 더 이상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인만큼 오히려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을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직장' 공식 파괴 세대불문 당면
잠시 멈춰도 추락없는 안전망 중요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금, 조용한 퇴사와 대퇴사시대는 꼭 청년층에게만 해당 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일=직장'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은 세대 불문 당면한 현실이다. 누구나 나이와 상관없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 충분한 휴식을 갖고 이직을 포함한 다른 삶으로의 전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그래도 출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과 사장님들 모두에게 희망이 아닐까? 누군가의 선택을 부러워하는 대신, 잠시 멈추더라도 추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과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정지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