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 딸 30여년 돌보다 끝내 살해한 모친 영...<YONHAP NO-3878>
38년간 돌본 뇌병변 장애인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지려 했던 60대 어머니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선처했다. 사진은 60대 어머니 A씨가 2022년 5월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다. 2022.5.25 /연합뉴스

38년간 돌본 뇌병변 장애인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지려 했던 60대 어머니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선처했다. 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끝내 비극을 맞이한 이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이 판결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장애인 가족들의 슬픈 현실, 이들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 역할 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이다.

法, 살인 혐의 징역 3년·집유 선고
출생 당시부터 장애… 홀로 양육
작년 1월 대장암 진단에 간병까지
"비극 재발 않도록 사회가 책임을"


■ '암 투병' 뇌병변 장애 딸 고통에 어머니는 무너지다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류경진)는 지난 19일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은 A(63·여)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그의 딸 B씨(사망 당시 38세)는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장애가 있었다.

뇌병변 장애는 뇌 손상으로 인한 복합적인 외부 신체 기능의 장애로 상·하지 마비, 관절 경직 등 뇌병변 부위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시각이나 청각·언어 장애, 지능저하가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뇌병변 장애인은 누군가의 헌신적 도움 없이는 홀로 삶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B씨의 뇌병변 장애는 그중에서도 중증이었다. A씨는 생계를 위해 지방 등을 오가며 일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며 38년 동안 딸 옆을 지켰다.

그런 모녀에게 지난해 1월 불행이 찾아왔다.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A씨는 딸의 항암 치료 등 간병까지 전담했다. 딸은 투병 도중 혈소판 감소 증세가 나타나 항암 치료를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평소 우울증과 불면증 등을 앓던 A씨는 딸이 괴로워하는 모습에 점점 무너졌다. 결국,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지기로 한 A씨는 같은 해 5월23일 인천 연수구 자택에서 자신이 불면증 치료 목적으로 복용하던 수면제를 딸에게 먹였다. 잠이 든 딸의 코와 입을 베개와 수건으로 막았다.

A씨는 범행 후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집을 찾아온 아들에게 발견돼 구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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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간 돌본 뇌병변 장애인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지려 했던 60대 어머니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선처했다. 사진은 60대 어머니 A씨가 2022년 5월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다. 2022.5.25 /연합뉴스


■ 법원 선처 판결에 이어 검찰도 항소 포기


검찰은 A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A씨는 당시 법정에서 "딸과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혼자 살아남아 정말 미안하다. 나쁜 엄마가 맞다"며 흐느꼈다.

이어진 선고 공판에서 A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법정 구속을 면했다. 검찰의 구형과 살인죄 형량 등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선처'였다.

재판부는 "아무리 피해자의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면서도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이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자신들의 책임으로만 고통을 겪고 있다. 이번 사건도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검찰도 27일 A씨가 장기간 힘들게 장애인 딸을 돌봤고 간병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은 점 등을 심사숙고해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 "어머니는 딸을 죽인 게 아닌 38년을 살린 것"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누가 어머니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 '38년 간의 헌신에 존경을 표한다', '법원의 선처에도 어머니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 것'이라며 A씨를 위로했다.

정순경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대표는 "뇌병변 장애인은 바람 앞의 촛불이다. 어머니는 딸을 죽인 게 아니라 38년을 살린 것"이라며 "살아오면서 분명 사회 곳곳에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을 텐데 사회가 그 손을 잡아주지 못해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가족의 삶을 살펴봐 준 판결이 뜻깊긴 하지만 혹여 장애인을 돌보는 부모들의 비극적 선택이 늘까 염려도 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