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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결혼식보다 장례식장 갈 일이 많아졌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떠들썩하게 축하하는 경사보다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는 애사가 더 가까워지는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의식,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애사는 꼭 챙겨 가려 노력하는 편이다. 되도록 정성스럽게 옷을 차려입고 길을 나선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흔적을 남긴다. 고인의 사진이 올려진 제단에 국화꽃을 올리고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남겨진 이들, 상주와 인사를 나눈다. 슴슴한 국과 반찬 몇 가지에 밥을 한술 뜨며 고인의 마지막을 듣는다. '살아생전 어떤 분이셨는지,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조문객마다 물었을 질문에 상주는 처음인 것처럼 이야기를 전한다. 이렇게 수 십번, 수 백번 곱씹으며 고인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우리는 장례라는 의례를 통해 고인을 기억하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추모하고 애도할 권리. 이것은 단지 장례의 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인이 떠나는 과정의 의문이 있다면 진실을 밝혀내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고 책임을 묻고, 기억하는 등 폭넓은 의미이다. 추모와 애도는 상실의 경험을 한 이들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떠나간 동료 시민을 기억하고 아픔이 반복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0·29참사 100일 가까이 되도록
책임 회피하는 사람들만 가득
서울시장·행안부 장관 홀로 조문


우리 사회는 지금, 추모와 애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사라져간 이들을 기억하며 이태원 거리에 분향소가 설치된 지 50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생명을 잃은 159명의 영정이 가득 메운 분향소에는 그들이 살아온 시간,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 짙게 배어있다. 시민들이 낮 밤 없이 분향소를 찾는다.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고 분노하고 또다시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빈다. 추모와 애도의 마음으로 연결된 시민들이 피해자의 곁에서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태원에 들어선 분향소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11번이 넘는 구조신호에 국가는 응답하지 않았는지, 왜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 왜 사과하지 않는지. 참사 100일 가까이 되도록 책임을 회피하고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만 가득한지.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들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태원 참사가 48일째 되던 날 오세훈 서울시장이 분향소를 홀로 찾았다. 국정조사 청문회장에서 오 시장이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면 다녀갔는지 아무도 몰랐던 조문이었다. 설 전날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아무 예고도 없이 방문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개별 유가족과의 비공식적 만남만을 요구하면서 유가족협의회와의 전체 만남은 거부했었다. 그 이후 두달여만의 방문 역시, 사전에 유가족들에게 조문하겠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조문받는 유가족을 앞에 두고 "유가족들은 안 계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서울시장과 행정안전부 장관의 몰래 한 조문. 이것이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보여준 무책임한 모습이었다. 정말 추모하고 애도한다면 스리슬쩍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이야기를 건네야 했다. 그리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고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는 행보가 오히려 참사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만을 남기고 있다.

내달 4일 시민추모제 진행
제대로 사과받기 위한 애도 과정

2월5일, 이태원 참사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전날인 2월4일에는 10·29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시민추모제가 진행된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제대로 사과받기 위한 추모와 애도의 과정이다. 국가의 빈자리를 또다시 시민들의 온기로 채우고 있다. 시민들의 추모와 애도로 피해자들의 상처가 아물 수 있게 부디,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