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어 사회적 화두를 던진 드라마 '소년심판'이나 '더글로리'는 학교폭력을 다룹니다. 극이 다루는 학교 폭력의 시기나 양태는 다르지만 10대 청소년에게 끔찍한 상흔을 남긴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학교폭력을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는 크게 2가지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학교에 경찰관을 상주시키거나 촉법소년과 같은 유예 조항을 대폭 삭제·축소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데 비해 처벌이 약해 근절이 어렵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입니다.
반대는 10대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교육단계인 만큼 교육을 강화해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학교폭력 뿐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는 대부분의 사회문제에서 처벌 강화와 예방 강화라는 2가지 주장은 같은 구조로 늘 상충합니다.
여기 비슷한듯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지난해 1월 27일 시행된 이 법은 큰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책임을 묻도록 하는 게 골자입니다.
재해 안전관리 소홀 사건 흔적 많아
관리 책임 사업주 처벌 취지로 도입
커다란 재해가 났을 때 신문지상엔 '인재'(人災)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서 발생한 사고로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뜻입니다. 불행히도 사고 현장에서 기자들은 인재의 흔적을 너무나 많이 찾아내곤 합니다.
큰 사고를 낸 트럭이 며칠 전부터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켰다거나 화재 대피로에 물건이 쌓여 있다거나 건물 마감재를 난연 소재로 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흔적들을 거의 모든 사건마다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발전하며 산업 현장이 팽창한 수십 년 동안 이런 종류의 사건이 이어지다 보니 시민들은 공통된 의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것, 또 법으로 규제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그것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런 인식에 기반해 시행됐습니다. 큰 사고 이후 조사를 거쳐 일정 부분 안전 관리 미흡이 확인되면 사업장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건을 막아보자는 것이죠.
저는 일부러 재해를 언급하며 '사고'와 '사건'을 혼용했습니다. 비슷한 것 같은 두 단어는 재해에 있어 엄밀히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사고는 피할 수 없었던, 어쩌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우연한 일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
반면 사건은 인과관계가 명확한 일입니다. 원인이 있어 사건이 발생했고 따라서 원인 제공자를 처벌할 수도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그간 우리가 사고라고 인식해 온 일을 사건으로 전환하는 법인 것입니다.
조사·처벌 제대로 없어 '성적 초라'
법개정 앞서 효과적인 방법 되짚어
이 법 시행 1년의 성적표는 초라합니다. 제대로 된 조사도, 제대로 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중론입니다. 일각에선 앞서 언급한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처벌이 능사일까,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해서 사건을 막을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아닐까.
학교폭력과 중대재해는 다릅니다. 그렇다 해도 예방에 초점을 맞추자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우리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앞서 중대재해 사건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흔적을 좇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전문가들의 의견과 사업장 현장의 모습을 되짚었습니다.
여러분이 읽고 처벌 강화인지 예방 강화인지 결론을 내려보시기 바랍니다. 단, 전제가 있습니다. 더 이상 인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