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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인정(人情)에 휘둘리면 법 앞의 평등이 깨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와 같이 법이 사람을 가리면 법치가 무너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 모양이다. 법은 모름지기 추상(秋霜) 같아야 권위가 선다. 하지만 가을서리처럼 냉랭한 법에도 눈물이 있다. 눈물은 사람이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 인지상정이다. 솔로몬은 자식을 포기할지언정 죽일 수 없었던 어미의 인지상정으로 명판결을 남겼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법원의 노 판사 프랭크 카프리오는 자비로운 판결로 감동을 주는 법정 영상으로 유튜브 유명인사가 됐다.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선처하는 재판 과정은 법적 정의와 형평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일말의 인지상정 없이 수많은 장발장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법적 정의는 아닐 테다.

인천지방검찰청이 최근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한 어머니의 1심 판결의 항소를 포기했다. 지난 19일 인천지방법원은 검찰이 징역 12년을 구형한 이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파격적인 선처였지만, 1주일 시한인 26일을 넘겨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것이다.

딸을 사망케 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연에 법원과 검찰이 공감한 결과다. 날 때부터 몸이 불편했던 딸을 38년간 대소변을 받아내며 오롯이 보살폈던 어머니다. 그 딸이 대장암에 걸려 항암치료로 고통받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나 홀로 죽으면 끝날 형벌 같은 삶이지만, 남겨진 딸을 누가 돌보나 싶어 여기서 같이 끝내자며 무너졌고, 딸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혼자 깨어났다. 그런 어머니가 불쌍해 아들은 장문의 탄원서로 법원의 선처를 호소했다.

판사는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가족들이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본인을 탓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선처했고, 어머니는 법정을 나와 한 없이 오열했다. 최종적으로 검찰이 재판부의 판결과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해 항소 포기를 결단했다. 딸의 생명을 빼앗은 죄는 무겁다. 법의 선처에도 어머니는 평생 죄책감에 갇혀 지낼 테니, 진정한 법적 정의는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법적 정의는 가을서리와 눈물 사이에 있는 듯싶다. 사회적 약자의 눈물에 공감하고 강자의 권력에 추상같은 법을 고대한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