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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에 가족이 모였다. 사촌까지 서른 명이 넘는데, 미취학 아동은 60개월짜리 남아 한 명뿐이다. 가족 구성원을 따져보니 20대 이상이 10대를 압도했다. 부모 세대와 조카 세대 숫자가 비슷했고, 손주 세대는 줄어드는 역 항아리 구조다. 30대 조카 세대 중 기혼은 셋에 불과했고, 여섯은 미혼이었다. 40줄 미혼자도 있다. 결혼을 안 하니 손주는 언감생심 아닌가.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자영업을 하는 50대의 '나 홀로' 식당 순례기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즐기며 잠시나마 자유인의 호사를 누리는 모습에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시즌 10까지 방영됐다. 첫 시리즈가 제작된 2010년대 초반엔 일본만의 현상이었으나 우리도 현실이 됐다. 삼겹살을 혼자 굽고, 전골을 따로 먹는 식당이 흔해졌다.

페북에 혼술 모임이 있다. 회원들은 홀로 술을 마시는 사진을 공유한다. 둘 이상 여럿이 모인 장면엔 양해를 구한다. 성별 구분 없이 20대 이상 연령층이 게시물을 올리는데, 낮술도 제법 많다. 가끔은 혼술 족이 자주 찾는 업소도 노출된다. 수원 나혜석거리 주점은 두 명 이상 손님은 받지 않는다. 둘만의 자리는 테이블 두 개뿐이고, 나머지 10여 석은 마주 볼 수 없다. 일본식 선술집인데, 주말엔 30분 이상 대기해야 닭꼬치를 맛볼 수 있다.

저출산은 대학가 하숙집 풍경도 바꿔놨다. 저렴한 비용이 장점인 2인실이 독방으로 대체된다. 대학들도 기숙사 1인실을 늘리고 있다. 충청권 대학은 아파트를 모델로 해 거실은 공유하되 방은 따로 쓰도록 배려했다. 학생들 상당수가 성장기를 혼자 보냈기에 타인과의 동침이 낯설고 불편한 게다.

얼마 전 김건희 여사가 여당 여성의원들을 관저로 초청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연애담 등이 주목받았으나 육아와 비혼 등 의미 있는 대화도 오갔다고 한다. 일부 의원은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주재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여론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둘이 하나도 낳지 않는 초저출산으로 국가가 사라질 위기라는데, 정부도 국회도 한가하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장은 여당 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물러났다. 잦은 경고음이 외려 불감증을 키우고 있다. 이대로는 소멸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