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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아파트에 사는 주부가 1월 관리비 고지서를 커뮤니티에 올렸다. 총액 57만원으로, 전월 42만원보다 15만원(36%) 늘었다. 공동관리비는 15만6천원으로 2%(3천100원) 올랐는데, 개별관리비가 26만7천원에서 41만4천원으로 54%(14만6천원) 급등했다. 전기와 난방이 주범이다. 전기료는 12만9천원에서 15만8천원으로 2만8천원(21%) 늘었다. 난방비는 4만4천원에서 15만원으로, 2.5배(10만5천원) 폭등했다. 계절 요인을 고려해도 놀랄만하다.

난방비 폭탄에 겨울나기 풍속도(風俗圖)가 흑백 TV 시절로 돌려졌다. 온풍기, 전기 매트, 전기요가 다시 꺼내지고 매출이 급증했다. 핫팩에 냉기를 막아주는 문풍지, 단열 시트로 중무장한다. 명절 전후 한파에 방한용품이 이상 품귀다. 난방용 가전매출은 전년 동기 170% 넘게 폭증했다. 농촌에선 목재용 보일러가 뜨거워졌다. '난방비 절약 비법'이란 온라인 글에 '좋아요'가 쌓이는 서글픈 세태다.

9개월 사이 도시가스 요금은 4차례, 38% 인상됐다. 지역난방비 34%, 전기요금은 18.6%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전기·가스 요금을 억지로 묶는 바람에 인상 폭이 커졌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발전을 중단 또는 축소한 문 정부 정책이 재소환됐다. 겨울철엔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뻔한 사실을 간과한 정책 오류는 가리고 또 전(前) 정부 탓을 한다. 한전과 가스공사 적자 폭을 몰아서 줄이려다 민생고를 키웠다. 비난 여론이 거세자 에너지 바우처(이용권) 확대 등 대책을 내놨으나 민심을 달래기엔 태부족이다. 


이재명, 추경 제안 정부곳간 외면 생색내기
경기지사땐 재난지원금 살포로 빚 2조 늘어


아이디어 고갈에, 정책 빈곤은 야권도 다를 게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30조원 추경예산을 제안했다. 우선 3조원이라도 긴급 수혈하자 보챈다. 난방비 폭탄으로 고통받는 서민과 취약층 보호를 위해 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게다. 화수분이 아닌 정부 곳간 사정을 외면한 생색내기다. 돈 보따리로 폭탄이 제거되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걱정할 게 뭔가.

이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 재난지원금을 살포했다. 예정되지 않은 돌출 예산을 쓴다고 세금을 더 걷을 수는 없다. 광역지자체는 조세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실질 부채는 지역개발기금 차용액뿐이고, 통상적인 재정운용 범주에 그친다고 했다. 1인당 10만원 안팎 3차례 줬을 뿐인데 2조원 가까운 빚이 늘었다. 경기도는 매년 2천억원씩 갚아가는 중이다. 선심 쓰고 광낸 전임자는 떠나고, 후임은 뒷감당을 하느라 허리띠를 풀지 못한다. 도민들은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없다는데, 도정(道政)은 가용재원이 모자라 쩔쩔맨다.

이 대표와 야당이 재촉하는 '횡재 세(windfall tax)' 도입도 과한 주장이다. 예상치 못한 초과이익을 얻은 에너지 기업에 세금을 걷어 취약계층이나 소상공인 에너지 이용에 활용하자 한다. 유럽 여러 나라가 이미 시행 중이라며 법 개정을 서두른다. 틀린 말은 아니나 산유국과 석유수입국은 사정이 다르기에 무리가 있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이중과세 논란에, 기업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걱정들을 한다. 예산이 부족하다니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는 발상이 근본책일 수 없다.

정부, 정책 앞서 장단점·부작용 따지기 소홀
여전히 남탓 '나도 나을게 없다' 자인하는 꼴


문재인 정부는 6천원 수준인 최저 시급을 임기 내 1만원 넘도록 올리려 했다. 취임 첫해부터 15% 넘게 과속해 자영업·소상공인을 무덤으로 몰았다. 현 정부가 적자 폭을 줄이겠다며 수개월 새 가스요금을 40% 가까이 올린 것도 다르지 않다. 정책 시행에 앞서 장단점을 따져보고, 부작용을 줄이려는 정무적 소임을 소홀히 했다. 해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남 탓을 하는 건 '나도 나을 게 없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야당도 사정이 딱하다. 정밀 진단에 근거한 처방전이 아닌 포퓰리즘에 기대려 한다. '묻지 마' 대안에, 추경 타령을 하며 정부·여당을 몰아세운다. 민생은 군산시장과 광주 대인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위정자들의 전국 전통시장 순회공연은 감동을 잃은 지 오래다. 정치가 못난이 경쟁을 하니 실망이 커지고, 무당층이 는다. 팍팍해진 민생이 난방 폭탄에 얼어붙었다. 여·야는 혐오정치로 허물을 감추려 한다. 민생이 만만한가 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