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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이 입춘이었다. 봄이다. 겨울이 꽃을 시샘해 심술을 부릴지라도 이미 온 봄을 막을 도리가 없다. 웹사이트를 뒤져보니 우리 말 '봄'의 어원 설명이 다양해 "이거다"하고 딱 하나 인용할 자신이 없다. 한자어 '춘(春)'의 상형 기원도 '짝짓기 하는 날'이라거나, '풀이 돋아나는 형상'이라고도 하니 단정하기 힘들다. 차라리 영어 'spring'이 직관적이다. 만물이 용수철처럼 튀어 솟는 계절이 '봄'이다.

이제 곧 벚나무는 겨울을 온전히 이겨낸 힘으로 꽃을 피울 테고, 봄의 캐럴 '벚꽃 엔딩(버스커 버스커)'이 전국에 울려 퍼질 테다. 봄이 사라진 세상이 오면 봄을 설명하는 대신 '벚꽃 엔딩'을 들려주면 된다니 아티스트에겐 최고의 찬사이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꽃비 내리는 거리를 거니는 연인들, 그 자체로 봄이다.

손 잡은 연인이 사랑을 키우듯, 햇살은 얼음을 녹여 물길을 만들고, 물 먹은 대지는 포슬포슬 풀어질 테고, 농부는 흙을 어루만지며 씨앗을 뿌릴 것이다. 하늘은 새들의 구애 비행으로 어지러울 것이며, 땅에서는 동물들이 짝짓기에 여념이 없을 테고. 사람들도 '고생 끝 행복 시작'의 기운으로 넘치는 봄맞이에 설렌다. 이래야 봄 다운 봄이다.

봄 같지 않은 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2019년 입춘 직후 참성단 '제목'이다. "인세(人世)의 형편과 시세(時勢)의 기운이 각박하면 봄은 잔인한 계절이 된다"고 했다. 경제, 정치, 외교 환경을 거론하며 "나라와 국민의 기운이 겨울을 벗어났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올해 봄, 겨울의 잔영이 유난히 짙을 것 같다. 개구리보다 물가가 더 높이 뛰어오를 기세다. 3고 경제위기로 수익이 줄어든 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나섰다.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탓으로 영끌족들이 이자에 죽어나가는 동안 은행들은 돈을 주체하지 못한다. 야당은 이재명 살리기에 눈이 멀었고, 여당은 윤석열 심기 경호에 귀를 닫았다.

이상화는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한탄했는데, 들을 되찾은지 오래건만 왜 우리는 무시로 봄을 빼앗기는 것인가. 2023 민생의 봄은 또다시 춘래불사춘이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