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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예비평가 루카치는 그의 '소설의 이론' 첫머리를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는 서정적 문장으로 채웠다. 그는 밤하늘의 별이 지도가 되어주었던 시대를 떠올리면서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이 되돌아가야 할 길임을 에둘러 말하였고, '하늘의 별빛과 내면의 불꽃'이 완전하게 한 몸이었던 시대를 불러오면서 '하늘의 별빛'은 천상의 초월적이고 신성한 질서를 '내면의 불꽃'은 그러한 신성함을 향해 상승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비유하는 것으로 보았다. 결국 그는 탁월한 비유의 연쇄를 통해 우리의 궁극적 존재 방식이 바로 이러한 서정적 충일함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우리 시인들도 '별(빛)'의 이러한 아우라를 통해 불모의 시대를 초월하려는 상상력을 보여준 흔적으로 가득하다. 


이육사 詩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현실 굴하지않는 희망적 미래 읊어
 

먼저 이육사의 별을 바라보자. 그는 '육사시집'에 실린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서 '꼭 한 개의 별! 아침 날 때 보고 저녁 들 때도 보는 별/우리들과 아주 친하고 그 중 빛나는 별을 노래하자/아름다운 미래를 꾸며볼 동방의 큰 별을 가지자//(…)//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다만 한 개의 별일망정/한 개 또 한 개의 십이성좌 모든 별을 노래하자'라고 썼다. 여기서 우리는 식민지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한 시인이 모두의 희망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가자고 역설하는 장면과 만나게 된다. 현실에 굴하지 않는 열망을 담은 이 작품은 부정적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적 미래를 위해 '한 개의 별'을 노래하는 육사의 풍모를 다시 한 번 알게 해준다. 그렇게 육사의 별은 '내면의 불꽃'을 생성케 한 근원적 상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별의 시인은 윤동주다.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어둠을 밝히는 '하늘의 별빛'으로 충일하다. 시집의 서시로 쓰인 유명한 작품에서 그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고 썼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다가오는 불가항력의 운명과 함께, 그럼에도 내면에서 끝없이 솟아나는 그의 굽힘 없는 의지를 이 작품에서 읽는다. 바로 그 순간 '하늘과 바람과 별'이 서로 화창하면서 잠시 흔들렸을 것이다. 이때 새벽이 되면 사라져갈 별은 시인이 사랑하려는 '모든 죽어가는 것'과 존재론적 등가를 이룬다. 그리고 시인은 다시 별이 바람에 스치움으로써 자신의 노래도 실존적 난경에 맞닥뜨리게 될 것임을 예감한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불가항력 운명 굽힘없는 의지 읽혀
그 간절함 따라 지금도 가파른 시대


또한 정호승은 '우리가 어느 별에서'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이토록 서로를 그리워하느냐/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라고 썼다. 여기서 '나'와 '그대'는 오래 전 어느 별에서 만났지만 지금은 헤어져 서로의 그리움을 확인하고 있다. 비록 헤어졌지만 별빛은 남았고, 잠들었지만 새벽을 흔들어 깨울 수 있었던 그들은 '사람의 모닥불'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존재로 현상한다. 결국 이 작품은 어느 별에서 만나 지금은 헤어져 그리움을 가진 이들이 나누는 영원한 사랑의 노래이다. 별이라는 심상은 그러한 사랑을 가능케 해준 낭만적 거처였을 것이다.

이처럼 '별'의 심상은 척박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희망'과 '의지'와 '사랑'을 담은 상상적 지도 역할을 찬란하게 수행하였다. 별빛과 불꽃을 함께 노래한 이 시인들이 찾았던 그 간절함을 따라 우리도 가파른 시대를 걸어가고 있다. 다시 닥쳐온 어둠의 시대에 우리를 인도할 '별빛'은 지금쯤 어디서 미래를 꿈꾸며 바람에 스치우고 있을까.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