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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26일 용인읍 김량장리 151고지. 튀르키예군이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시다)'를 외치며 고지로 돌격했다. 고지를 점령했던 중공군은 튀르키예군의 백병전에 박살났다. 북·중 연합군에 수도 서울을 다시 빼앗겼던 전선의 열세를 만회한 '김량장리 전투'로 튀르키예군은 대한민국 수호의 주역이 됐다. 해마다 용인시 튀르키예군 참전기념비에서 추모행사가 열린다.

튀르키예는 6·25 전쟁 때 1만5천명의 병력을 파견해 4천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하는 희생을 감수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일라'는 전선에서 맺은 인연을 60년 동안 이어 온 튀르키예 부사관과 전쟁고아 소녀의 실화를 영상으로 옮겼다. 한-튀르키예 양국의 관계는 이 실화와 같이 특별하다. 돌궐 제국시절 고구려와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했던 역사를 생각하면 나라와 민족 사이에도 숙명적인 관계가 작동하지 싶다.

당연히 튀르키예를 향한 한국의 애정은 각별하다. 2002년 월드컵 때 양국이 3, 4위전에서 만나자 상암월드컵 경기장엔 태극기와 튀르키예 국기인 월성기가 관중석을 덮었다. 형제국 선수들을 위한 붉은 악마들의 배려였다. 한국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예상했던 튀르키예 중계진들은 물론 생방송으로 이 장면을 목격한 튀르키예 전체가 감동하고 감격했다.

형제국가 튀르키예가 비극에 잠겼다. 지난 6일(현지 시간) 모두가 잠든 새벽을 강타한 대형 지진으로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지역이 폐허가 됐다. 발생 직후 1천여명이던 사망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1만명에 육박했고, 얼마나 늘어날지 짐작조차 못한다. 겨울 추위가 잔해에 갇힌 생존자들의 골든 타임을 갉아 먹고, 이재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튀르키예 참사 현장을 담은 한 장의 사진. 잔해에 묻혀 사망한 딸은 겨우 팔 하나만 내놓고 있다.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표정 없는 석상이 됐다. 온전히 딸을 품에 안을 때까지 그 손을 놓지 않을 테다. 시간이 없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가 지체 없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로 구호팀을 보냈다. 대한민국도 110명의 구호대를 급파했다. 부족해 보인다. 정부는 튀르키예에 절실한 인력, 장비, 예산을 아낄 이유가 없고, 민간의 자발적 연대도 확산돼야 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제대로 보은할 때가 왔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