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터키로 불린 튀르키예는 우리에게 형제 나라다. 튀르키예 조상 돌궐은 우리와 인연이 깊다. 돌궐 4대 황제 빌게 카칸(716~734) 비문에는 '돌궐과 고구려는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1950년 한국전쟁 때 터키는 지상군 1만5천명을 파병했다. 16개 참전국가 가운데 미국과 영국에 이은 세 번째 규모였다. 용인 마성IC 부근 터키군 참전비는 '터키 보병여단은 한국의 자유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침략자와 싸웠다. 여기 그들의 전·사상자 3,064명의 고귀한 피의 값은 헛되지 않으리라'고 적고 있다.
이런 인연 때문에 튀르키예 인들의 한국사랑은 각별하다. 한국산 제품을 선호하고 한국인들에게는 우호적이다. 튀르키예 여행을 하다보면 그들의 따뜻한 눈빛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나 또한 수년 전 터키 여행 중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노병을 만났다. 한국전쟁 참전 배지를 자랑스럽게 내보인 그는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형제 나라'를 언급하며 긴급구호대 110명을 파견하며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 튀르키예는 이슬람 국가다. 이런 까닭에 구조 현장에서도 하루 다섯 차례 아잔(기도 소리)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 1만5천명 파병 '형제 나라'
각국 구조대 종교 초월 구조에 여념
한데 이슬람 문화권을 바라보는 우리사회 시선은 굴절돼 있다. 이달 초 대구에서는 이슬람 사원 신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돼지고기 수육 파티를 벌여 논란이 됐다. 주민들은 공사 현장 앞에서 돼지고기 수육 100인분을 나눠 먹었다. 이들은 지난해도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돼지고기는 금기 식품이다. 주민들이 이런 퍼포먼스를 벌인 건 상대 문화를 욕보이려는 의도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이슬람 사원 신축 허가는 적법하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면 기도 때문에 소음이 우려된다며 공사를 가로막고 있다.
근거 없는 이슬람 포비아는 이슬람에 대한 다양한 적대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앞서 2018년에도 우리사회는 제주도 예멘 난민을 놓고 민낯을 드러냈다.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나 성범죄자로 치부한 나머지 예멘 난민들을 추방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난민신청 허가를 폐지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주 만에 무려 70만명이나 동의했다. 이슬람 혐오가 낳은 부끄러운 단면이다. 현대 사회는 다인종, 다종교, 다문화 시대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공존한다.
'아잔' 비극 남기지 않겠다는 인류애
'아야' 같은 기적 계속되길 바라며
이슬람문화 우리의 시선 변화 기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린다. 메카는 이슬람을 창시한 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이다. 무슬림에게 기도(살라트)는 신앙고백(샤하다)과 자선(자카트), 단식(사움), 성지순례(하즈)와 함께 5대 의무 중 하나다. 이 가운데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게 하루 다섯 차례 예배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을 이집트 카이로에서 처음 들었는데 경이로웠다. 이후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를 비롯해 이슬람 문화권을 여행하는 동안 숱하게 아잔을 접했다. 메카를 향한 기도와 아잔은 소음이 아니라 이슬람권에서는 신성한 일상이다.
튀르키예로 달려간 세계 각국 구조대는 종교를 뛰어넘어 구조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것은 참사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을 그들만의 비극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뜨거운 인류애다. 마음먹기에 따라 아잔은 얼마든지 은혜로운 음성이 될 수 있다. 튀르키예 지진을 계기로 이슬람 문화를 대하는 우리 시선에도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아야'와 같은 기적이 계속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다양성과 관용을 생각하며 오는 주말에는 터키군 참전비를 찾아보길 권한다. '네가 없으면 내가 없고, 네가 있으면 나도 있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