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총은 어디에서 왔는가. 장총의 쇠붙이는 어디에서 왔는가. 펌프, 가마솥, 삽, 호미, 촛대, 그리고 자전거였다. 녹일 수 있는 쇠붙이는 모두 녹였다. 장총의 나무는 어디에서 왔는가. 백두산과 지리산의 그 졸참나무가 베어졌다. 그리고 호른의 밸브는 방아쇠가 되었다. 생활과 생명 그리고 영혼의 숨결을 녹여서 폭력의 시대를 연장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총을 거쳐 간 사람이 자그마치 열일곱 명이다. 그중에는 일본 관동군도, 중국 팔로군도, 국군도, 인민군도, 그리고 빨치산도 있다. 만주, 제주도, 낙동강, 지리산을 누비며 수많은 목숨을 거두었다. 일제강점기, 해방기, 제주 4·3,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장총은 그 주인을 바꾸어 가며 셀 수 없는 생명을 앗아갔다. 때로는 제국의 이름으로, 때로는 반제국의 이름으로, 그리고 때로는 해방과 통일의 이름으로 장총의 방아쇠는 당겨졌다. 그 폭력의 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는' 자서전을 장총은 그렇게 써 내려가고 있다.
장총은 민간인과 군인을 구별하지 않았다. 또한 장총은 어린아이와 산모도 구별하지 않았다. 서해성의 시에 이지상이 곡을 붙여 노래한 '나무를 심는 사람들'에도 이러한 총탄과 포탄의 잔혹이 담겨 있다. '저 총탄이/ 아이와 군인을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저 총탄이/ 우유공장과 탱크를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 저 포탄이/ 노인과 여자를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저 포탄이/ 군수공장과 병원을 구별한단 얘기를/ 난 듣지 못했네/ 총탄이 날아온 그 숫자만큼/ 꽃씨를 뿌려요/ 평화의 꽃씨를/ 총탄이 날아온 그곳을 향해서/ 노래를 불러요/ 평화의 노래를'.
'탱크·미사일·드론' 바뀌었을 뿐
폭력 시대 '평화 시대' 전환위해
우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게 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만 1년이 되어 가고 있다. 아이와 군인을 구별하지 않기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반도에서는 장총이 그러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탱크와 미사일과 드론이 그러하다. 장총이 노인과 여자를 구별하지 못한 것처럼, 탱크와 미사일과 드론은 우크라이나 말을 쓰는 사람과 러시아 말을 쓰는 사람을 구별하지 못한다. '키예프'를 '키이우'라고 쓰는 사람과 '키이우'를 '키예프'라고 쓰는 사람을 구별하지 못한다. 바뀐 것이 있다면 장총의 자리를 탱크와 미사일과 드론이 차지한 것뿐이다. 장총의 자리를 탱크와 미사일과 드론이 차지하는 동안 살이 찌고 몸집이 커진 것은 오로지 군산복합체일 뿐이다.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하나, 사실은 생명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파괴한 결과일 뿐이다.
연극 '빵야'의 주제는 "은하수를 끌어와 무기를 씻을 수 있을까"라는 대사에 잘 담겨 있다. 이 대사는 두보의 시구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가져왔다. 1천2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변함없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평화의 꽃씨를 뿌리고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은하수를 끌어오는 꿈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날이 흐려 밤하늘의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은하수가 그 자리에 없을 리 없다. 장검이 장총으로 바뀌고 장총이 다시 탱크와 미사일과 드론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은하수가 그 자리에 없을 리 없다.
이제라도 무기 녹여 쟁기 만들고
악기 만들어 평화의 노래 불러야
'악기가 되고 싶은 장총'의 바람은 폭력의 시대를 평화의 시대로 전환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게 한다. 과연 우리는 쟁기를 녹여 무기를 만들던 제국의 시대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가를 묻게 한다. 이제라도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시대로의 전환을 꿈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라도 무기를 녹여 악기를 만들어 평화의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