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먼저 곽상도 전 국회의원. 아들의 퇴직금과 성과급 명목으로 대장동 일당에게 50억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김만배의 뇌물공여 혐의도 무죄라 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뇌물을 받은 사실이 의심된다'면서도 '결혼해 독립한 아들의 이익을 아버지의 것으로 평가할 만한 증명이 없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1억35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국회의원은 1심 재판에서 1천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재판부는 윤 의원이 개인계좌를 이용해 후원금을 비정상적으로 관리하고 일부 횡령한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의원직 유지 판결을 내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피고인들에게도 1심 판결은 관대했다. 논란이 된 공소시효보다도 '시세차익 실현에 실패한 시세조정'이라는 판결문이 화제가 됐다.
여론이 부글부글 끓는다. 법원이 권력자의 결혼한 자녀에게 뇌물을 제공하라는 뇌물 상납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공분이 거세다. 위안부 할머니를 후원한 국민 성원을 기만한 사람이 금배지를 계속 다는 게 맞느냐고 묻는다. 주가조작은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근본을 허무는 중대범죄이다. 성공과 실패로 죄의 경중을 구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여론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지면 안 된다. 정치권이 여론을 빙자한 국민정서법으로 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법도 시대의 공론을 반영한다. 1950년대 법원은 희대의 난봉꾼 박인수 재판에서 "법은 정숙한 여인의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법이 여인의 정숙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오만은 지금 가능하지 않다. 박인수를 감옥에 보낸 혼인빙자간음죄 자체도 2009년 폐지됐다.
어린 소녀의 인생을 잔인하게 훼손한 조두순이 12년형을 받자, 술 취한 악마에게 관대한 '주취감경' 판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n번방 사건으로 성 착취 범죄에 관대한 법원 판결에 국민적 비판이 확산하자 형량이 무거워졌다. 정치적 지향에 영향을 받는 국민정서법은 경계해야 하지만,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공론은 법으로 실현돼야 한다. 법원이 곽상도, 윤미향, 도이치모터스 1심 판결을 향한 비판 여론을 숙고해 보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