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출시도 전, 네티즌이 들뜨고 문의전화가 빗발친다. 극성을 넘어선 성화에 예정된 숙성기간을 수개월 앞당겨 판매대에 올린다. 한정 수량에 즉시 품절이라, 판매점 앞에는 수일 전부터 줄이 선다. 애주가 선물로 이만한 게 없고, 정상가 10배 웃돈이 붙어 리셀(resell)될 정도다. 대체 뭣이기에, 이 난리인가.
토종 브랜드 '김창수 위스키' 얘기다. 지난해 상반기 1호, 하반기 2호 위스키가 잇따라 출시됐다. 입소문을 들은 소비자들이 매장을 찾았을 땐 이미 늦었다. 얼마 전, 목마른 애주가들을 설레게 하는 낭보가 전해졌다. 김포 통진 소재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가 3호 위스키를 판매한다고 알렸다.
원래 2년 넘게 숙성하려던 것을 1년8개월 만에 꺼냈다고 한다. 위스키 애호가들의 재촉을 견뎌내지 못했다. 알코올 50.5도에 판매가 24만원. 물로 희석해 도수를 낮추는 것이 아닌 원액 그대로 병에 담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방식이다.
400병도 안 되는 물량에 시중에 절반만 유통되면서 쟁탈전이 심했다. 서른 병 가까이 확보한 GS25 매장에는 어김없이 줄이 섰다. 1·2호엔 한글로 '김창수'라 했는데, 영문 표기와 함께 디자인에 변화를 줬다. 김창수(37) 대표가 직접 도안했다고 한다.
주류 전문 유튜브 채널 '주토피아' 운영자가 3호 위스키를 시음하면서 전문가적 소견을 내놨다. 길지 않은 숙성기간에도 불구, 기분 좋은 단맛에 안정적인 향이라고 평했다. 1·2호와 비교하면 '거칠지 않고 한층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갈수록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벌써 후속 제품이 기다려진다고 전했다.
'사람도 물건도 쉽게 묻혀버리는 세상에서는 완성품이 아닌 '과정'을 판매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 베스트셀러 '프로세스 이코노미(오바라 가즈히로 저)'의 핵심 내용이다. 위스키 불모지에서 새 역사를 쓰는 김창수의 지난 역정이 다르지 않다. NHK 방송은 명품 위스키를 향한 그의 열정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했다.
김창수 위스키는 '무모한 도전'을 현실로 바꿨다. 20대에 사직하고 수년간 본고장 스코틀랜드 도가를 뒤졌다. 제품 공정을 유튜브에 공개해 대중과 거리를 좁혔다. 젊은 세대에 굴하지 않는 용기와 영감을 주고 있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