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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TV 영화채널의 단골 재방 레퍼토리이다.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이 원전이다. 작가는 아일랜드 국민시인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영감을 받아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저기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네.'(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시의 첫 구절이다. 유희처럼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는 노인의 가치관으로는 이해도 적응도 할 수 없는 세상을 은유한다.

최근 고령사회문제 해법으로 노령층의 집단 할복을 주장한 30대 경제학자 때문에 일본이 발칵 뒤집어졌단다. 예일대 교수인 나리타 유스케가 지난해 말 온라인 TV에서 한 발언인데 뉴욕타임스 보도로 난리가 났다. 나리타는 과거에도 안락사 의무화를 주장하는 등 노인을 사회적 기생 계층으로 폄하한 전력 때문에 "문맥과 관계없이 인용됐다"는 항변이 무색해졌다.

일본계라지만 미국 명문대 교수가 군국주의의 망령인 '집단 할복'을 노인문제 해소 방안이랍시고 내놓았으니, 학자의 소양을 따지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실격 판정을 받아 마땅하다. 뉴욕타임스가 뒤늦게 보도한 배경일 테다. 충격적인 건 나리타를 지지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경제 침체의 원인이 고령사회로 믿는다고 한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해도 괜찮다"며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발언했다가 제대로 역풍을 맞았다. 열우당은 의석 수십 개를 날려먹었다고 자탄했다.

정치인의 노인 폄하 발언은 여전히 금기이지만, 정치권의 득표 전략은 청·장년 세대에 집중한다. 고령사회에 부담을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된 결과이다.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논의가 자연스러워진 것도 고령화 사회 유지비용에 대한 세대별 인식의 변화 때문이다.

고령층에 속속 합류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장수시대가 본격화하고, 고령사회 유지비용이 확대되면 세대간 저주의 굿판이 일본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고령층의 장수가 저주의 표적이 되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진다. 세대 공존을 위한 복지 재설계가 시급하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