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901000756600036061

지난 연말 미국 정계에서 기상천외한 뉴스가 발생했다. 그해 11월 8일 실시된 미국 하원 선거에서 당선된 한 공화당 의원의 전력이 완전히 날조됐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의 주인공은 뉴욕 제3선거구에서 당선된 조지 산토스. 뉴욕주는 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이다. 산토스는 단번에 화제의 인물이 됐다. 우리로 치면 국민의힘 후보가 호남에서 당선된 이변이니 당연했다.

진실의 문이 열리면서 유권자의 환호는 경멸과 혐오로 바뀌었다. 산토스의 생애와 경력이 모두 허위라는 의혹이 일고 사실로 드러나서다. 뉴욕 버룩칼리지 졸업과 뉴욕대 대학원 MBA 취득 학력이 거짓이었다. 골드만삭스와 시티그룹 근무 경력도 허위였다. 조부모가 홀로코스트 피해자이고 어머니는 9·11테러 생존자라는 주장은 창작이었다. 동성애자라더니 여성과 결혼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브라질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추가됐다.

진보 성향이 우세한 뉴욕 유권자를 겨냥해 맞춤형 가상인물을 창조한 셈이다. 미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처음 뉴스를 접할 때만 해도 희한하지만 곧 정리되겠다 싶었다. 미국의 양심이 산토스를 그대로 둘리 없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산토스의 하원의원 취임을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그러나 산토스는 하원 의원 취임 선서를 하고 천연덕스럽게 의사당에 출근 중이다. 최근엔 대통령 국정연설에 참석한 산토스를 향해 같은 당 중진인 미트 롬니 의원이 "부끄럽지 않나.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며 면박을 주었다는 외신이 화제였다.

미국 하원도 재적의원의 3분의 2 동의로 의원 제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후안무치한 선거 사기꾼 산토스는 자리를 지킨다. 공화당의 속사정 때문이다. 하원 정원 435석 중 공화당은 과반수에서 4석 많은 222석이다. 하원 주도권을 쥐려니 한석 한석이 중요하다. 산토스를 날리면 뉴욕주 재선거는 민주당 승리가 뻔하다. 산토스를 추방해야 할 명분과 과반 의석을 지켜야 할 실리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정치적 배경이다.

유권자들이 산토스의 불법 회계 의혹을 제보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2년 임기 내에 법원 판결이 나올지 불투명하다.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사기꾼에게 무기력한 미국 의회 모습은, 민주주의 교과서라는 명예와 거리가 멀다. 권력의 손익계산엔 정의와 공정이 없는 법인가.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