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바둑 '알파고'와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2016년 3월 세기의 대결을 벌였다. 5번기에서 알파고는 인간계 초고수 이세돌에 4대 1로 쾌승했다. 세 판을 내리 뺏긴 이세돌은 4국에서 기발한 착상으로 전세를 엎었으나 최종전은 다시 내주고 말았다. 세상을 놀라게 한 알파고는 이후 폐기됐다.
인공지능 대국 프로그램 '카타고'는 중국 '절예(絶藝)'와 함께 알파고를 개량한 세계 최강 AI다. 바둑에 특화된 신경망을 추가 장착했다. 국내 최정상급 프로기사들이 2점 정도를 접어야 호각일 정도로 막강 실력을 갖췄다. 프로기사들도 수년 전부터 카타고와 대국하며 기력을 연마한다. 절예로 학습한 리쉬안하오(李軒豪·26) 9단이 세계랭킹 1위 신진서(24) 9단을 꺾으면서 치팅(cheating)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아마추어 기사가 카타고에 연승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아마추어 기사 '켈린 펠린'이 카타고와 15판 승부를 해 그중 14판을 이겼다고 보도했다. 인간이 AI를 상대로 호선(互先)으로 이긴 건 이세돌 이후 7년 만이다.
아마 6단 기력인 펠린의 승리 비결은 변칙이다. 초반부터 대마 두세 개가 죽어 전세가 불리해진다. 2, 3선을 기며 집을 짓지만, 중반 시점엔 100집 이상 밀리기도 한다. 종반 순식간에 전세가 바뀌면서 역전한다. 죽은 돌을 포위한 상대 돌을 포획하고 자신의 돌을 살려내는 것이다. 죽은 돌에 집착하는 무모한 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최선의 수만을 찾는 AI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프로기사라면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가일수할 텐데, 인공지능은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필린에 도움을 준 프로그램 설계자 애덤 들리브는 "AI 약점을 파고드는 작업은 놀라울 만큼 쉬웠다"고 한다. 들리브가 파악한 카타고의 맹점을 표적으로 펠린은 100판 넘는 실전을 거쳤다고 한다.
정공법이 아닌 꼼수이나 AI의 약점을 증명해냈다. AI는 지식은 많이 축적했으나 이해도는 떨어지는 한계를 드러냈다. 지능형 AI와 ChatGPT 등장으로 걱정이 커지는 와중이다. 기보(棋譜)를 보면서 미래세대가 AI 군단에 고전하다 절묘한 지략으로 승전하는 장면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