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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6, 7년 전의 일이다. 서울 여의도에 볼일을 보러갔다가 9호선 국회의사당역 근처에서 필자의 대학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박정희 철권통치 하에서 반독재투쟁을 주도하다가 고문과 투옥은 물론 학교에서 제적까지 당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반가운 나머지 인사를 했더니 그 선배는 국회의사당 정문 인근의 2∼3인용 천막으로 필자를 안내했다. 비닐로 덮은 허름한 천막 입구에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대자보들과 피켓 등이, 텐트 내부 돗자리 위에는 침구와 식사도구, 물통, 세면대야, 라면봉지, 핸드마이크 등이 놓여 있었다. 거의 혼자 그곳에서 숙식하며 외로운 투쟁 중이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금배지 서너 번쯤 달고 국회를 누비고도 남을 정도로 자격이 충분한 양반의 행색이 남루하고 초라해 보이니 말이다. 어설픈 민주투사들이 구국의 영웅인양 호의호식하며 정치판에서 호통치는 모습과 너무 대비되었다. 필자는 황망한 나머지 명함만 건네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떴다.

이후 그 선배로부터 종종 문자를 받았다. 2010년에 모 지방대학 시간강사가 학교 측의 부당한 대우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을 전하면서 대학의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에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시간강사 출신의 시민운동가들이 만든 강사법안은 강사료의 파격적 인상과 대우, 전임교원에 준하는 신분보장 등이 담겨져 있어 솔직히 황당한 느낌이었다. 그 선배는 강사법 제정을 지지하는 자필서명도 부탁을 해서 몇 차례 망설이다 역자사지 심정으로 청원명부에 사인을 했다.

그리곤 한동안 그 선배와의 교신이 끊어졌는데 어느 날 고등교육법 개정안(강사법) 국회 통과뉴스를 접했다. 찌는 듯한 더위는 물론 추운 겨울 여의도의 삭풍(朔風)까지 견디며 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천막농성을 했던 그 선배에게 전화로 노고를 치하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돈에 미쳐가는 지경인데 자신의 신념에 따라 초지일관하는 노(老)시민운동가에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필자가 향후의 계획을 묻자 그 선배는 "고향에서 농사지어 입에 풀칠이나 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며 홀가분해 했다. 


공채·4대보험·1년 의무임용·방학 임금지불
법적으로 시간강사 처우 획기적 개선 불구
대학들 겸임·초빙·대우 교수 늘리는 '꼼수'
학생들 강좌 선택 줄고 강사 씨 말릴 수도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필자는 자괴감에 기분이 별로이다. 최근 주경야독으로 서울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늦깎이 제자가 필자에게 시간강사 자리를 부탁했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 탓이다. 이 대학, 저 대학의 지인들에게 청탁했더니 요즘에는 시간강사 자리 구하기가 별 따기 만큼 어렵다며 난감해 했다. "아, 강사법!" 필자의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2018년 11월에 국회를 통과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요지이다. 2019년 8월부터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반드시 공채로 선발하고 4대 보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1년 이상 의무적으로 임용하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3년 동안 재임용도 보장한다. 수업이 없는 방학기간에도 임금지불은 물론 퇴직금까지 지급하며 교원소청심사 청구권도 보장한다.

법적으로 시간강사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대학들은 시간강사 수를 최대한 줄이는 대신 겸임교수, 초빙교수, 대우교수 등을 크게 늘렸다. 무늬만 교수인 이들의 급료는 시간강사 정도에다 4대 보험은 안 들어줘도 되며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다. 퇴직금도 물론 없다. 더욱 매력은 겸임교수 숫자가 많을수록 교원확보율도 높아져 대학의 대외신인도가 제고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임교원들의 강의부담이 증가해서 교수들은 불만이 크다.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강좌수도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꼼수라며 대학을 비난할 수도 없다. 무려 14년 동안 등록금이 동결되어 마른 수건까지 짜낼 정도로 운영이 어려운 지경인 것이다.

시간강사들을 보호하겠다고 고생하며 만든 강사법이 조만간 대학에서 강사들의 씨를 말릴 수도 있어 보인다. 자신이 쳐놓은 법망(法網)에 걸려 능지처참된 중국 전국시대의 바보(?) 상앙(商앙, BC 390∼BC 338)이 연상된다. 기회가 되면 그 선배에게 소회를 물어봐야겠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