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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종말시계'(The Doomsday Clock)는 핵무기로 인류가 멸망할 위기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아인슈타인 등 미국 핵과학자들이 1947년 자정 7분 전으로 발표한 데서 유래했다. 핵무기의 패륜적 위력에 죄책감을 느껴 시작한 반핵 캠페인이다. '운명의 날 시계'라고도 한다. 자정이면 핵전쟁으로 인류가 사라진다. 해마다 미국 핵과학자회(BAS)가 분침을 조정해 발표한다.

20세기엔 미국·소련 냉전과 미국·러시아 데탕트 사이에서 분침이 요동쳤다. 미·소가 수소폭탄 실험을 한 1949년엔 자정 2분 전에 육박했다가, 미·러가 핵전력 감축협정을 체결한 1991년에 자정 17분 전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탓에 20세기는 자정 9분 전으로 마감했다.

21세기 들어 분침은 자정을 향해 돌진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의 패권주의가 충돌했고, 기후 위기가 현실화한 데다 핵보유국이 늘었다. 북한은 노골적인 핵무장 공언으로 2018년 분침을 자정 2분 전으로 밀어올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부터 3년은 자정 100초 전이었다.

지난달 BAS가 발표한 지구종말시계의 분침이 충격적이다. 지구 종말까지 90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고전 중인 러시아가 전술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란다. 러시아는 1주일 전쟁을 공언했지만 내일이면 개전 1년이다. 초조한 러시아의 전술핵 위협은 허세가 아니다.

러시아뿐 아니다. 미국과 패권 경쟁에 나선 중국은 핵무기 확충을 추진한다. 북한은 ICBM 시험발사로 미국을 도발하고, 대한민국엔 전술핵 공격을 공개적으로 겁박한다. 일본 원폭 투하 이후 70여년 간 전쟁 억지용이던 핵무기가 최근 몇년 사이 실전용으로 돌변했다.

소련 붕괴로 1991년 독립할 당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보유량이 1천800기였다. 이를 미국·영국·러시아로부터 영토보전과 정치독립을 보장받기로 하고 폐기했다. 하지만 핵보유국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빼앗은데 이어 본토를 침공했다. 강대국의 영토보전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고, 고통은 온전히 우크라이나 몫이다. 핵무기 18개만 남겨두었다면 모면할 수도 있었던 비극이다.

핵보유국을 억제할 수단이 없으면 우크라이나처럼 국지적 종말의 표적이 된다. 북한 핵무장에 대응해 대한민국 핵무장 여론이 높아졌다. 지구종말시계의 아이러니다.

/윤인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