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이 서해 접경지역에 있는 섬 교동도의 사라진 포구를 조사한 내용들로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의 제목은 '격강천리(隔江千里)의 섬이 된 교동도 그리고 사라진 포구'다. 인천문화재단이 진행한 인천의 서해접경지역 포구에 대한 종합학술조사의 2번째 결과물이다.

교동도는 강화도 서쪽에 있는데 바다 건너가 바로 북한 땅이다. 전해지기는 옛 교동도에는 무려 11개의 포구가 있었다고 한다. 섬 북쪽에는 북진포, 율두포, 말탄포 등 5개의 포구가 남쪽에는 죽산포, 빈장포, 남산포 등 6개가 존재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북한 황해도 연백과 교류관계가 명확히 나타난 교동 북쪽 해안의 북진포, 율두포, 말탄포와 조선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교동의 관문 역할을 한 남산포(동진포)와 강화도에서 교동도로 들어오는 관문인 인화진도 포함했다.

보고서는 9개의 장으로 구분했다. 1장 조사개요로 시작해, 2장 교동도의 개관, 3장 교동도 북부의 관문 포구 북진포, 4장 연안읍장을 보러 가던 포구 율두포(바머리포구), 5장 새우잡이 배의 전진기지 말탄포, 6장 교동도의 관문포구 동진포와 남산포, 7장 강화와 교동을 이어주던 나루터 인화진, 화보를 수록한 8장 사라진 포구의 흔적들, 그리고 맺음말로 마무리된다.

보고서는 각 포구의 원형과 변천을 살필 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생활·민속상, 사진, 주민들의 이야기와 이야기를 재구성한 일러스트 등으로 '문화예술적 해석'도 진행했다고 한다.

교동도의 포구는 한국전쟁과 분단시기를 겪으며 대부분 사라졌다. 한강하구를 중립수역으로 설정하고, 선박 출입을 통제하며 포구의 몰락이 가속화됐고, 1950~1960년 낮은 납북 사건으로 어로 한계선이 설정되며 그나마 남아있던 포구의 기능은 상실됐다고 한다. 또 2000년대 들어 해안에 2중의 철책이 설치되며 주민들은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됐다.

인천문화재단은 이번 조사 보고서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과거 포구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고, 당집은 물론 산신제와 풍어제 등의 모습을 조명하는 등 포구 마을의 민속신앙 양상을 확인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고 마지막 장에서 밝히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올해는 접경지역 포구에 대한 종합학술조사가 3년 차에 들어가게 된다"며 "개선된 점은 발전시키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겠다"고 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