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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우 작가
좋은 사회는 책임을 잘 분배하는 사회이다. 주어진 역할과 보상에 어울리는 책임을 각 구성원이, 권력자와 국가가 그리고 기업이 나눠 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 나쁜 사회다. 책임의 분배가 형편없다. 영화 '다음 소희'는 이를 훌륭한 연출로 담아낸다.

한겨울 저수지에서 얼어붙은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이자 대기업 하청 콜센터의 현장실습생인 '소희'다. 단순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던 형사 유진에게 한 현장실습생이 용기를 내어 말한다. "자살했던 사람이 또 있었어요." 영화에서뿐 아니라 실제로 이 콜센터에서 두 명이 자살했다. 석연찮음을 느낀 유진은 진상 파악에 나선다. 학교, 하청 콜센터, 본사, 교육청을 차례차례 조사한 유진은 비명을 토해낸다.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데가 없어." 한국 사회의 공고한 작동원리가 이 단말마에 담겨 있다. 한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책임의 분배가 엉망진창이고 이는 직업훈련에서도 마찬가지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어지간해선 책임을 지지 않도록 제도가 보장해준다. 대신 현실과 영화에서 익히 보듯 약자나 피해자에게 탓을 돌린다. 


책임 분배 잘 되는 것이 좋은 사회
한국 '제도의 허점'을 통해 회피
약자 탓 돌리는 모습 영화서 담아


기업, 학교, 교육부, 노동부에겐 사업체 현장실습이 잘 이뤄지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영화가 잘 그려냈듯, 책임의 분배가 아닌 책임의 회피가 제도의 허점을 통해 이뤄진다. 교육부는 노동부나 경찰에, 노동부는 교육부나 경찰에, 학교는 교육부나 기업에, 기업은 학교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를 막기 위해 제도적으로 책임을 정하는 것이 대통령이나 장관, 입법부의 몫이지만 이들 역시 응당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인권위 보고서를 정리하면 학교전담 노무사는 매뉴얼에 따라 형식적인 점검에 그치기 십상이다. 또 사무직은 안전점검에서 예외이므로 콜센터는 아무리 건강을 해치더라도 안전한 일터로 간주된다. 현장실습 실태 통계조차 부실하게 작성하는 교육부에겐 사업장에 대한 전면적인 감독 권한이 없다. 즉,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부분적으로 과태료 부과 권한이 있지만 2018~22년 사이 연간 수백 건의 과태료 부과 해당 사례 중 단 한 건에만 부과되었다(부과 대상 사례도 축소 조사되었을 여지가 크다).

노동부는 현장실습 법령상 일체의 관리 책임도 질 의무가 없다. 학교와 취업담당 교사는 교육부가 평가하는 취업률 지표에 얽매여 있어 문제 제기에 소극적일 뿐 아니라, 악덕 기업인지 아닌지 학생의 말을 들어보기는커녕 문제 사업장으로 의심되는 기업에 학생을 욱여넣는다. 게다가 일부 교육청에서는 현장실습을 많이 보낸 교장에게 성과급을 주기까지 한다.

'현장실습' 학생들 권리 사각지대
불이익 준다면 교장부터 처벌해야


결국 현장실습 및 노동여건을 기업이 망가뜨릴 때 이를 제어해야 할 기관 및 책임 당사자들이 제도의 구멍을 통해 부당하게 면제받는 구조가 구축돼 있다. 또한 취업률을 높이기만 하면 책임을 다한 것처럼 왜곡되어 사태를 악화시킨다. 이 잘못된 책임의 분담을 해결할 책임은 대통령과 입법기관 등 정책 수립자에게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도 사회적인 압력도 부족하다. 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불안, 허약한 노동권과 학습권, 학교 측의 회유 및 겁박 등으로 문제 제기에 나서기 힘들다. 이 속에서 현장실습생이 생지옥에 던져지느냐 마느냐는 운으로 결정된다.

정확한 확인은 불가하나 현장실습이 승인된 사업체 전부에 실습생이 한 번 이상 파견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곧 현장실습이 매우 파행적임을 시사한다. 학생 직업훈련의 선도국가인 독일에서 직업훈련 자격을 얻은 기업 가운데 3분의1 이상이 모집에 실패한다. 학생이 원치 않는 기업엔 가지 않고 학교도 이를 종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정부가 취업률 제고를 명분으로 직업훈련 체계를 망치지 않는다는 뜻도 된다. 또 독일노총은 2만명의 직업훈련생을 대상으로 해마다 보고서를 발간하여 학생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써 훈련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학생의 자유의사로 현장실습의 실시 여부를 결정하고 학교로 복귀했을 때 불이익을 준다면 교장부터 처벌하는 것. 한국은 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소희'를 막을 뿐 아니라 직업교육의 정상화도 가능하다.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