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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밤은 수많은 눈을 가지고 있다. 밤의 눈은 반짝이는 별을 통해 몇 억 광년이나 떨어진 우주의 신비로움을 보게 한다. 밤은 낮의 밝음 안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수많은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밤의 음악은 수많은 동물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밤은 반딧불이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올빼미의 삶을 드러낸다. 밤은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걸어왔던 삶의 역사를 보게 만든다. 밤에만 보이는 별자리는 그 삶의 역사를 이야기로 들려주지 않는가. 그 안에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과 이별은 물론, 힘든 노동을 통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 조상의 거친 삶이 담겨있다. 그러나 밤은 우리 안에 감춰져 있던 어두움과 숨기고 싶었던 일들은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밤은 두려움과 불안을 주기도 한다. 우리 삶과 존재를 노리는 도둑과 원수의 시간이 바로 밤이 아닌가. 그뿐 아니라 내 안의 모순과 거짓, 죽음과 공포가 밤을 통해 나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밤은 한편으로 숨겨진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 두려움과 모순을 드러내는 어두움이기도 하다. 밤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과 두려움 두개의 얼굴 지녀
전구 발명 등 '밝음'이 지배하며 상실


1879년 12월 미국의 발명왕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백열전구라는 새로운 물건을 보여주었다. 빛을 간직하고 조절하는 물건이 인간의 손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후 15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밤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두려움과 공포를 떨치게 되었고, 밤에만 움직이는 적의 그림자를 물리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우리는 반딧불이의 사랑과 올빼미의 삶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먼 우주의 신비로운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었다. 수많은 별자리에 담겨있던 우리 조상의 삶과 역사는 사라지고, 은하수를 통해 들려오던 우주의 노래도 사라졌다. 이렇게 우리 삶의 이야기도 빛을 잃게 되었다. 그 자리에 오직 대낮의 밝음이 모든 숨은 아름다움을 앗아갔다. 공포와 불안이 사라졌지만, 숨은 아름다움과 어두움 속에 빛나던 진실도 사라졌다.

그 대신 우리는 온 종일 대낮의 밝음 속에서 허덕이게 되었다. 주당 120시간을 노동으로 바쳐야 한다고 그들이 명령한다. 그 밝음 속에서 휴식과 잠을 빼앗긴 인간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그 밝음 속에서 죽어간다. 한 낮의 밝음 안에 숨어있던 아름다움과 진실은 사라졌다. 우리 안에 수줍게 감춰져 있던 어두움은 죄악시 되었다. 우리는 마침내 삶과 존재의 심연을 박탈당하게 되었다. 자본과 기술이 밤을 삼켜버렸다. 인간은 모순적 존재다. 모순은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니다. 몸을 지닌 인간은 근본적으로 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드높이는 존재다. 모순은 인간이 버려야할 나약함이 아니라 드높여야할 기본 값이다. 모순이 문제가 아니라 모순을 어떻게 드러내느냐 하는 데 인간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이 자리한다. 밤의 어두움 속에서 우리는 우리 삶의 모순과 존재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통합해간다. 철학자들이 말하듯이 대자와 즉자를 그렇게 연결시키는 것이 인간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은 우리 안의 타자가 주는 갈등을 일치시켜 가야한다. 그 모든 것은 낮의 밝음이나 합리적 계산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밤의 어두움 속에서 흩어지면서 모아지는 과정에서 가능해진다. 그래서 중세 신학자 쿠사누스는 인간을 밤의 어두움 속에서, 무지의 구름 속에서 이 모두를 일치시켜가는 과정의 존재로 이해했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근본적 한계와 유한성의 어두움을 밝히는 힘은 모순을 일치시키는 신의 존재성에서 온다. 삶과 존재는 이 유한함과 모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을 통해 일치시켜가는 과정 안에 자리한다.

몸의 이야기 듣고 마음 드높이는 존재
모순 부정하고 강함 주장하는것 '거짓'
더불어 살며 내면 어두움 받아들여야

내 안의 이 한계를 보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유한하지만 이를 넘어서려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 안의 모순을 알고 받아들이듯이 너의 모순과 약함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 삶과 존재의 모순을 부정하고, 다만 나의 강함만을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 하지 않는 것은 모두 거짓이다. 내 안의 어두움을 보면서 너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죽은 삶을 살 뿐이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