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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다가 내 첫 산문집을 발견했다. 2013년에 쓴 책이니 딱 10년이 되었다.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그 책의 홍보 카피 중 하나는 '마흔 살 노처녀가 들려주는 소소하고 다정한 이야기'였다. 그 카피를 가만히 쳐다보자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싶다. '노처녀'라니. 2023년 지금 '노처녀'라는 단어는 감히 출판계에서는 쓸 수 없다. 결혼을 못 하고 늙어버린 처녀라는 말을 쓰고도 무사하길 바랄 수는 없을걸.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미혼'이라는 단어도 퇴출된 지 오래다. 이제는 모두 '비혼'이라는 단어를 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를 쓴 걸 보고 내가 정색했다. 아직도 이런 단어를 쓰냐고, 동물이 어떻게 장난감이 될 수 있냐고 야단하는 나에게 학생이 말했다. "사전엔 있는데요?" 사전에 있어도 '애완동물'은 사어(死語)나 다름없다. 이제는 '반려동물'이다. 그러고 보니 십 년 전쯤 어느 국어학자가 신문 칼럼을 쓰며 내 소설을 들먹인 적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오래 지켜온 우리 낱말을 함부로 바꿔쓰는 작가로 나를 호명한 것이었다. 그 학자가 문제 삼은 건 '길고양이'였다. '도둑고양이'라는 올바른 낱말 대신 출처도 알 수 없는 '길고양이'라 썼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가는데 그깟 낱말 따위. 불과 십 년 사이 우리는 다들 변했다. "잘 지냈어? 결혼은 했고? 아직 안 했어? 어쩌려고 그래?" 오랜만에 만나 그런 인사를 건네는 친구는 이제 없다. 무례한 소리라는 걸 이제 안다. 맞벌이인데 남편 밥 안 챙겨주냐고 잔소리하는 시어머니는 이제 설 자리가 없다. 아내가 늦은 퇴근을 할 때까지 쫄쫄 굶으며 기다리는 남편이 있다면 남편의 친구들도 그를 욕할 것이고, 데이트 비용을 반반 내지 않는 여자가 있다면 그건 같은 여자들에게도 욕을 먹는다. 되지도 않을 끈적한 농담 따위 지껄였다가는 인생이 끝장날 수도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초등학생이 된 내 딸도 "엄마, 여왕은 있는데 왜 남왕은 없어?"라고 묻는 판국에 나는 이제 소설 속에서 '그'와 '그녀'를 구분해 쓰지 않는다. 모두 '그'다.

사람들은 한번 새 세상 맛보면
후퇴도 않고 이전으로 못 돌아가


세상은 왜 이리 변하지 않느냐고 여태 한탄하지만, 생각해보니 많이 변했다. 물론 저절로 변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기어이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별나다고, 피곤하다고, 싸움닭 아니냐고 욕먹으며 오래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결과가 더디 나타나 속상한 적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나마 변했다.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말이다.

나는 꽤 낙천적인 사람이다. 십 년이 더 지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근거는 딱 하나다. 사람들은 한 번 새 세상을 맛보면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다. 평등한 세상을 알아버렸는데, 더 나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버렸는데 이전으로 훌쩍 돌아갈 수는 없다. 유별나고 피곤한 싸움닭들은 점점 그 수가 불어날 것이고 이전의 십 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십 년 후면 내 딸은 열아홉 살이 된다. 내 딸이 사는 십 년 후의 세상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변화는 오래전부터 시작되는 법
못본척 해도 더 강렬하게 다가와
당분간은 싸움닭으로 살 수밖에


인구 절벽의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정부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아직 정부는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일자리와 집값 폭등에 그 탓을 모두 돌릴 일이 아니다. 그 속에 숨은 여성 불평등의 문제와 여성 역시 살아 움직이는 욕망의 주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늦은 밤, 한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하소연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후배는 아이 둘의 뒷바라지를 친정 부모님에게 맡겼다. 회식이 있던 날, 아이들의 학원 라이딩을 남편에게 부탁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네가 너 좋자고 회사를 다녀서 벌어진 일인데 그걸 내가 왜 책임져야 하냐?"였단다. 가끔은 막막하다. 변화는 오래전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귀 막고 눈 가리고 못 본 척해도 그 변화는 점점 더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고 마침내 모두 달라지겠으나 갈 길이 이다지도 멀다. 어쩌겠나. 쉬고 싶지만 당분간은 싸움닭으로 살 수밖에.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