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이름없는 존중없는 일터
노조 만들고 소중한 호칭 되찾아
변화는 사람답게 살기위한 과정
아파트는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약 2년 동안 노동자의 손길과 정성이 닿아 만들어진다. 땅을 다지고, 시멘트를 붓고, 내부 자재를 채우고, 장식을 하고 모두 사람의 손이 하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전한 삶의 공간을 만드는 소중한 노동을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폄하해 왔다. '막노동', '노가다'라고 낮춰 부르고 노동자들의 처우 역시도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데 한참 미치지 못했다. 대형 건설사, 하도급 업체, 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근로계약서 없이 임금이 중간에 떼먹히거나, 임금체불이 관례처럼 이어졌다. 허허벌판 공사현장에서 화장실 한 칸 없이 일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만 30분이 걸려 공사 중인 건물 안에서 용변을 보는 일이 허다했다. 마땅한 휴게 공간이 없어 박스를 깔고 쉬는 일도, 옷 갈아입을 공간이 없는 것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안전 장비를 지급받지 못해 개인이 사서 사용하는 문제도, 위험한 현장에서 한해 400명(2021년 기준)이 넘는 사람이 죽어가는 일도 익숙한 일상이었다. 긴 시간 공기 단축,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하에 건설노동자들의 삶과 안전은 외면당해왔다. 어쩌면 일터에서 존엄한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시간들이 노동자를 '막노동꾼, 노가다꾼'으로 불리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문제는 빼앗는 것과 무시를 관행으로 만든 건설업체와 이를 방관한 정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지난 시간 건설노동자들은 무시와 빼앗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권리, 노동자로서 권리를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변화를 일구어왔다. 자신들의 일터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관행과 관례, 불법적인 시스템'으로 얼룩진 건설현장을 바꾸는 과정이었다. 안전하고 존중받는 일터를 만드는 일은 그곳에서 살게 될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규제할 대상 노동자 아닌
불법 구조 건설업계 관행 아닐까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동자들이 만들어온 일터의 변화를 불법으로 규정짓고 '노조의 탈을 쓰고 약탈하는 집단'이라는 오명을 씌우고 있다. 노동조합을 조직폭력배처럼 묘사하는 혐오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고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괴롭힘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모든 건설 현장 문제의 근원이 '건설노동자'인 것처럼 프레임을 만들어, 그간 쌓아온 변화마저도 왜곡시키는 상황이다. 노동을 가장 존중해야 할 정부의 수장이 오히려 노동하는 이들의 권리를 후퇴시키고 있다.
오랜 시간 건설노동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이씨, 김씨, 아저씨 등등으로 불려왔다. 온전한 이름을 부르는 최소한의 존중이 없는 일터였다.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야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이름을 되찾고, 존중받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건설노동자들의 소중한 변화. 이는 불법과 폭력이 아닌 사람답게 살기 위한 과정이었다. 정부에서 규제하고 감시해야 할 대상은 노동자가 아니라 불법적 구조를 만들어 온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이 아닐까.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